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년만에 열린 정상회담에서 그동안 양국 관계 악화로 중단됐던 군사 대화 채널을 복원했다. 또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에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인공지능(AI)의 위험성에 대응하기 위한 미·중 대화 채널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두고 미국은 ‘국가안보 위협 기술 제공 불가’, 중국은 ‘노골적인 수출통제’라며 대립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4시간 넘게 진행한 정상회담이 끝난 뒤 “우리는 실질적인 진전(real progress)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15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대면 회담 후 366일 만으로, 이날 오후 시작해 4시간 가량 진행됐다.
미 고위 당국자는 정상회담이 끝난 후 “중국이 군사 통신 복원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펜타닐 생산을 억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양국간 군사 대화 제도화를 요청했다. 시 주석은 잠재적인 군사적 오판 가능성을 막기 위한 대화 복원에 동의하고, 양측이 서로의 우려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측은 양국 군의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 통화 등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이후 닫힌 미·중 양국간 군사 대화 채널이 다시 복원된 것이다. 외신들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로 충돌해 온 미·중 긴장관계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양국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문제 협력에도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펜타닐 문제가 미국이 직면한 최악의 마약 문제 중 하나라고 언급했고 시 주석은 펜타닐 단속을 약속했다. 회담에 참석한 미 당국자는 “중국이 미국에서 마약 위기를 촉발한 펜타닐의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회사를 추적하기로 합의했다”며 “미국은 중국이 약속을 이행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등 첨단기술 패권경쟁과 관련해서는 분명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미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미군에 맞서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지난해 10월부터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올해 8월부터는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에 대한 미국 기업의 대중 투자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미국이 수출통제, 투자 검토, 일방적 제재 등 지속해서 중국을 겨냥한 조치를 해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을 억압하는 것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인민의 발전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시 주석은 수년간 군사 행동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설명했다고 미 당국자는 밝혔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필요하며 중국이 대만 선거절차를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에서 확전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이 긴장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중국이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화는 잘 됐다”며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중의 첨단기술 패권전쟁이 노골화하고,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고, 시 주석도 중국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두 정상 모두 양국 충돌이 심화되지 않도록 미·중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1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로 여겨졌으나 해빙은 지속되지 않았고, 중국 정찰 풍선 사태로 양국 관계는 탈선했다”며 “이번 회담은 단지 양쪽 모두가 이익이라고 느껴 개최됐을 뿐이다. 하지만 해빙 무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분석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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