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마이크론에 비해 DDR5 시장에서 기술력으로 다소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형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등에 힘입어 D램 시장 주력 제품이 DDR4에서 DDR5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최근 TSV(Through Silicon Via, 실리콘 관통 전극) 공정 없이 32Gb(기가 비트) DDR5 D램을 잇따라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마이크론은 이달 9일 각각 이 사실을 발표했다.
TSV 공정은 칩을 얇게 간 후 수백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고 상단 칩과 하단 칩의 구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을 연결한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최근 반도체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DR5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 공정으로 그동안 평가돼 왔다.
업체들은 이전까지 16Gb D램 여러 개를 TSV 공정으로 하나로 묶어 128GB 모듈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TSV 공정을 거치지 않은 32Gb DDR5 D램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HBM에 TSV 공정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됐다.
특히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12나노급 32기가비트(Gb) DDR5 D램을 연내 양산할 계획이다. 덕분에 내년에는 HBM 생산 능력을 현재보다 2.5배 이상 늘릴 수 있게 됐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도 빠르게 좁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HBM은 D램 여러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다. AI 서비스 구현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시스템 반도체에 동반되는 장치다. D램 시장 내 HBM의 비중은 올해 9%에서 내년에 약 1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비해 뒤늦게 대응에 나서 다소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부터 HBM3(4세대 HBM)의 양산을 본격화하면서 SK하이닉스를 빠르게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엔비디아 수주 소식도 나왔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이미 주요 고객사와 해당 물량에 대한 공급 협의를 완료한 상황”이라며 “HBM3E도 24기가바이트(GB) 샘플 공급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 양산할 예정으로, 36GB 제품은 내년 1분기내 샘플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론도 지난 9일 128GB DDR5 RDIMM 메모리를 발표하며 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 줄이기에 나섰다. 마이크론은 TSV 공정 없이 자사 1β(베타) 기술로 구동되는 32Gb DDR5 D램을 기반으로 이를 선보였다. 마이크론에 따르면 128GB DDR5 RDIMM 메모리는 TSV 공정을 거친 제품 대비 비트 밀도가 45% 이상, 최대 에너지 효율이 최대 24% 향상됐다. 마이크론은 내년에 이 제품을 출하할 예정으로, 메모리 속도가 최대 8000MT/s까지 가능해질 것으로 봤다.
마이크론도 이번 일을 기점으로 TSV 공정을 HBM에 더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HBM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마이크론은 내년부터 HBM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지난 6일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대만 타이중 공장에서 내년 1분기부터 24GB HBM3E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에는 HBM3E 샘플을 엔비디아에 공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산자이 메토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월 4일 실적 발표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HBM은 고객사와 검증 단계에 있고, 내년 초에 수익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 실적에서 HBM은 7억 달러(9509억원)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향후 HBM 시장에서 점차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SK하이닉스는 경쟁사들과 달리 서버용 DDR5 시장에서 다소 느긋한 모습이다.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달리 아직까지 1β 기반 32Gb DDR5과 관련한 로드맵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경쟁사들과 달리 TSV 공정을 서둘러 HBM에 집중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로 1위, 삼성전자는 40%로 2위, 마이크론은 10%로 3위를 차지했다. 내년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47~49%로 엇비슷해지고, 마이크론이 3~5%를 기록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내년쯤 32Gb DDR5 시장이 개화될 것으로 보여 여기에 맞게 제품 개발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며 “TSV 공정을 거치지 않은 32Gb DDR5 제품은 내년부터 양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TSV 공정의 집중도가 각 업체들의 D램 시장 점유율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지도 관심사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D램 매출은 41억 달러로 전분기 대비 3% 증가했다. 점유율은 38.2%로 전 분기(42.8%)보다 줄었다. 반면 SK하이닉스 매출은 전 분기보다 49% 늘어난 34억 달러로 집계됐다. 점유율은 31.9%로 전 분기(24.7%) 대비 7.2% 포인트 상승했다.
두 업체의 점유율 격차는 6.3% 포인트에 불과했다.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가 10% 포인트 안쪽으로 좁혀진 것은 이례적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과 이에 따른 HBM 수요 급증 여파가 컸다.
업계 관계자는 “TSV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서버용 DDR5 시장에서 그만큼 원가 절감이 되기 때문에 가격적인 측면에서 경쟁에 더 유리해질 수 있다”며 “HBM 생산에도 역량을 더 집중시킬 수 있어 TSV 공정 없이 서버용 DDR5 생산을 먼저 시작한 삼성전자가 여러 측면에서 점차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