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과 관련된 영상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ASMR은 소리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한다는 의미로, 보통 소리에 집중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귀를 간질이는 가벼운 두드림(태핑), 나긋나긋한 목소리, 자연의 소리, 심지어 무언가를 먹으면서 내는 소리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시각적인 부분을 통해서도 심리적 안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영상미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매력적인 분야인 만큼 유튜브에는 ASMR과 관련된 영상 및 전문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이미 많다. 그러나 청각과 시각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웬만한 콘텐츠로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기란 쉽지 않다. 그중 눈에 띄는 크리에이터가 있었으니, ‘루루팡(LULUPANG)’이다. 루루팡은 ASMR을 접목시킨 ‘뷰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현재 구독자 수가 무려 94만 명(2020년 5월 기준)이다. 2018년 10월에 첫 영상을 올린 이후 이룬 성취다. 하나만 제대로 담아내기도 힘든데, ‘뷰티’, ‘애니메이션’, ‘ASMR’을 하나의 콘텐츠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튜브 활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준 루루팡을 만나보자.
비결은 신선한 콘텐츠 빨?
학업 미루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
Q. 우선 간략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뷰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루루팡이다. 메이크업, 피부관리와 같은 뷰티 관련 영상들을 ASMR과 접목시킨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으며, 9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본업으로 삼고 있다.
Q.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8년 9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호주에 왔다. 입학을 앞두고 있던 터라 시간이 남기도 했고, ‘타지에서 외롭게 있기보단 취미 생활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소소하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원래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사부작사부작 만드는 걸 좋아한다. 유튜브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운 좋게 유튜브가 단기간에 성장하면서 현재는 학업을 미루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Q. 첫 영상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2018년 10월) 구독자가 벌써 94만 명이다. 무엇이 통했다고 생각하나?
일단 많은 분들이 구독해 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 뷰티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가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다. 지금은 여러 크리에이터분들이 뷰티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활동하고 있지만, 내가 시작했을 당시엔 같은 콘텐츠가 없었다. 신선한 콘텐츠 빨(?)로 초반에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콘텐츠 특성상 특정 언어가 필요하지 않고, 뷰티가 전 세계인의 공통 관심사라는 점도 구독자 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건축학도의 반전 매력!
영상 한 편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루루팡이 만든 첫 뷰티 애니메이션
Q.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건가?
연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호주에서 석사과정도 건축학전공으로 밟을 예정이었다. 미술 관련 학과도 아니고, 공대 소속이긴 했지만,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토샵, 일러스트 등의 디자인 툴을 다루는 데 익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영상 제작,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해선 그야말로 ‘일자무식’이었다. 프로그램 기능들을 하나하나 눌러보고, 모르는 부분은 유튜브에서 찾아가며 독학으로 익혔다.
Q. 메이크업, 피부관리 등 ‘뷰티 애니메이션’에 주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은 초반 영상들을 다 정리해서 손 그림 스톱모션과 뷰티 애니메이션만 남아있지만, 초기에는 스톱모션 등 취미로 하던 모든 것들을 영상으로 담아 올렸다. 손 그림으로 스톱모션을 만들다가 컴퓨터화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만들 때는 타블렛이 없어서 마우스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틀 동안 꼬박 밤을 새웠는데, 작업을 마치고 나니 손이 막 저절로 떨렸던 기억이 난다. 힘들었지만 결과물이 생기니 뿌듯했다. 또, 많은 분들이 이 콘텐츠를 좋아해 주고, 다음 편이 나오길 기다려주셔서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됐다.
영상 콘티(대본)를 짜는 과정
영상 제작 과정
Q.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는지,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는지 등 전반적인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주제는 다른 뷰티 유튜버 분들의 영상을 참고하기도 하고, 구독자분들이 댓글로 적어주신 것을 참고하여 선정한다. 주제를 정하면 전체적인 스토리보드를 짜놓고, 포토샵으로 모델이 될 이미지와 소품들을 레이어로 나누어서 완성시킨 후, 조금씩 소품들을 움직이고 레이어를 조정하면서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저장된 이미지를 영상 프로그램(프리미어)으로 불러와서 이어 붙인 후 녹음을 통해 소리를 입히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 영상을 만드는 데 1500~2500장 정도의 이미지가 들어간다. 이런 제작 과정을 통해 3분 내외의 뷰티 애니메이션 한 편 만드는데 빠르면 일주일, 평균 2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시각적 ·청각적 효과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쾌감이 느껴지는 여드름 압출 영상의 한 장면
Q. 뷰티 애니메이션이면서 동시에 ASMR 영상이기에 소리가 핵심인데, 소리가 실제 메이크업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소리는 어떻게 녹음하는가?
영상을 전부 완성시킨 후 영상의 타이밍에 맞게 직접 소리를 내서 ‘콘덴서 마이크(전문적인 음향을 녹음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로 녹음하고 있다. 최대한 사실적인 소리를 담기 위해 실제 메이크업 제품들을 이용해 소리를 담고 있으며, 소리를 담을 수 없는 장면은 ‘유튜브스튜디오’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효과음 중 최대한 어울릴 만한 것으로 찾아 넣고 있다.
Q. 특히 ‘피부 압출’ 애니메이션은 쾌감이 느껴진다는 댓글이 많다.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건가?
‘피부 관리’ 관련 애니메이션은 직접 피부 관리를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피부 관리 영상들을 참고하여 만든다. 피부 관리를 많이 받아보긴 했지만, 받기만 하는 입장이다 보니 관리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또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유튜브를 통해 피부관리사 자격증 실기 강좌를 듣고, 다른 분들의 시술 과정 후기 영상들을 보면서 관리 순서를 짰다. 레이저와 같은 시술의 효과도 검색하면서 최대한 사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어느 정도 과장은 있는 편이다.
가장 아끼는 영상의 한 장면
Q.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영상은 어떤 영상인가?
처음으로 1,000만 조회수를 넘긴 피부관리 ASMR버전 영상이 가장 애정하는 영상 중 하나다. 3,000장에 가까운 이미지를 전부 마우스로 그리면서 손목을 희생시켰던 기억이 난다. 하필 사용하던 노트북도 망가져 친구 노트북을 겨우 빌려서 작업했다. 힘들게 작업했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뿌듯했다. 지금도 꾸준히 조회수가 오르고 있는 말 그대로 ‘효자 영상’이다.
루루팡이 가장 아끼는 영상 (피부관리 ASMR버전/메이크업 화장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여드름 압출 치료+보너스 되감기 영상)
화장품은 다 사서 사용할까?
최대한 많은 화장품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Q. 영상에 등장하는 화장품은 다 구입해서 써보는 건가?
영상에 등장하는 화장품은 직접 써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최대한 많은 화장품을 써보려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제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가지고 있지 않은 제품을 활용할 경우, 다른 유튜버분들의 리뷰 영상을 여러 개 또, 꼼꼼히 살펴보고 애니메이션에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 작업에 들어가기 전 사용할 제품 정보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Q. 뷰티 업계에서 협찬 연락이 많이 올 것 같다.
협찬보다는 광고 의뢰 연락이 자주 오는 편이다. 영상 특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광고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성사된 건은 많지 않다.
Q. 여담이지만, 실제 메이크업 실력이 좋은지 궁금하다.
내 입으로 메이크업 실력이 좋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화장 전후가 꽤 차이 나는 편인 것 같다. 화장을 안 하고 공항에 가면 입국 심사 때 신원 확인을 한 번씩 더 당하곤 한다.(웃음) 애니메이션의 모델들도 내 맨 얼굴을 참고해서 그리고 있다.
번역기 적극 활용!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Q. 구독자와 다양한 언어로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언어는 다 배운 건가?
영어와 한국어를 제외하고는 구글 번역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국가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해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실시간 라이브 할 때도 번역기를 옆에 켜두고 빠르게 복사 · 붙여넣기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Q. 해외 팬이 많아 다양한 언어의 댓글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댓글 창에 다른 언어 댓글이 우선적으로 보이면서 한국인 구독자의 볼멘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시청자 비율을 보면 어느 특정 나라에만 많이 분포해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루고루 분포되어 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해외 시청자분들도 많이 구독해 준 것 같다. 구독자나 시청자의 비율로 봤을 때 한국인의 비율이 3위 이내로 높은 편임에도 영어 댓글이 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동안 유튜브를 해온 경험상 댓글에 ‘좋아요’ 수가 가장 많더라도 ‘싫어요’가 하나라도 눌리면 댓글이 아래로 밀리는 것 같다. 유독 한국인들의 댓글에 한두 개의 ‘싫어요’가 눌려서 ‘좋아요’ 수가 많음에도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구독자 94만 명 유튜버의 수익 및 따라오는 고충
월 몇 천만 원, 억 대의 수익은 아니지만, 20대 사회 초년생에 비해서는 넉넉하게 벌고 있다.
Q. 조심스럽지만 지금 어느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익에 대해 정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20대 사회 초년생에 비해서는 넉넉하게 벌고 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월 몇 천만 원, 억 대의 수익은 절대 아니다. 유튜브 수익은 조회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기간이 길어서 한 달에 많아야 4개, 적을 땐 1~2개의 영상만 업로드하고 있다. 영상의 수가 적은 만큼 수익도 비슷한 구독자 수를 보유한 유튜버 분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루루팡이 밝힌 무단 도용이 많았던 영상의 한 장면
Q. 영상을 무단 도용하는 사례가 꽤 있다고 알고 있다.
피부과 로고를 영상 위에 입혀서 마치 그 피부과에서 만든 광고 영상처럼 속이거나 자신들이 만든 앱 광고에 영상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무단 도용이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 해탈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금전적 이득을 위해 사용되는 내 영상을 보고 많이 속상했다. 영상을 지워 달라고 메시지도 보내보고, 메일도 보내보고, 그 광고가 올라온 사이트에 신고도 넣었지만, 하나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SNS 특성상 그 사람의 국가가 어디인지 알기 어렵고, 소송을 걸더라도 국제 소송으로 진행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어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구독자분들이 꾸준히 무단으로 사용된 광고 영상들을 제보해 주시는데, 어찌할 방도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Q. 이런 건전한 영상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노란 딱지가 붙기도 했다. 속상할 것 같다.
몇 주 동안 열심히 만든 영상이 올리자마자 노란 딱지가 붙어서 수익이 안 나는 경우다. 지금도 노란 딱지가 붙어서 수익이 없는 영상들이 몇 개 있다. 몇 주 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게 처음엔 너무 속상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유튜버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욕심 없이 꾸준히 하는 것이 유튜버로 성공하는 비결!
Q. 약 2년 만에 90만 명 이상의 구독자 수를 달성했다. 유튜버의 꿈을 꾸거나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유튜버들의 수익이 공개되면서 많은 분들이 유튜브 시장에 뛰어드는 것 같다. 부푼 꿈을 갖고 처음부터 비싼 카메라와 장비들을 구입하지만, 시작해보니 막상 조회수도 안 나오고, 구독자도 안 늘어서 금방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돈 벌 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기보다는 좋아하거나 잘 하는 취미를 영상으로 담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보통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시작하게 된다. 이때 영상으로 담는 일이 즐겁지 않으면 퇴근 후 하는 또 다른 노동이 되면서 쉽게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영상 제작 자체를 즐기고 있다면, 조회수나 구독자 수에 변화가 없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 상 같은 주제를 꾸준히 올린다면 노출 빈도수가 올라가게 되어있다. 비싼 장비 없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컴퓨터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취미 생활로 여기면서 ‘욕심 없이 꾸준히 하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루루팡 뷰티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뷰티 관련 영상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ASMR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드리려고 한다. 또, 루루팡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를 제작하려고 계획 중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해 주시면 좋겠다.
진심을 다 해 결과물을 내는 크리에이터, 루루팡
루루팡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크리에이터로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직감했다. 그의 한 땀 한 땀이 담긴 영상처럼 사소한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정성이 눈에 보였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영상에 꾸준히 담아내다가 운 좋게 규모가 커졌다고 했으나 이틀을 꼬박 새워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매번 10개 이상의 언어를 번역해 영상을 올리는 등 뭐든 진심을 다해 결과물을 내는 그의 성격 또한 단기간에 성공하는 데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앞으로의 루루팡의 행보에 더욱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루루팡의 인사와 함께 즐거웠던 인터뷰의 끝을 맺도록 하겠다.
“꼭 좋은 영상으로 보답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글 : 이윤서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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