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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와 경기침체, 경영권 분쟁 등 각종 악조건 속 한계에 봉착한 기업들에 사모펀드(PEF)들이 수천억원씩 자금을 지원하며 잇따라 백기사로 나서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기업들이 자금 조달의 쉬운 선택지로 사모펀드와 손을 잡지만 결국 자본이 옭아맨 포승줄에 묶여 알짜 자산은 물론 경영권까지 넘겨주는 경우도 늘고 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TY홀딩스는 자회사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40%를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에 960억 원을 받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KKR은 TY홀딩스 최대주주인 윤석민 회장 일가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 60%도 인수하며 전체 24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TY홀딩스는 이와 함께 자회사인 평택싸이로 지분 37.5%도 600억 원을 받고 KKR에 매각하기로 했다. TY홀딩스와 윤 회장 측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활용해 최근 자금줄이 말라가는 계열사 곳곳에 수혈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TY홀딩스는 올 초 KKR로부터 4000억 원을 조달한 바 있다. 당시 KKR과 합작사인 종합 환경전문기업 에코비트 지분(50%) 및 태영건설(009410)이 보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내걸어 4년 만기 금리 13%로 사채 발행을 마쳤다. 그러나 이 자금만으로는 그룹 내 이자 부담 등 부채 위기를 감당할 수 없어 이번에는 알짜 물류 자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 경영권까지 넘기고 만 것이다.
TY홀딩스의 이 같은 상황은 그룹 내 핵심 자회사인 태영건설의 우발 채무가 급격히 커지면서 비롯됐다. TY홀딩스가 이달 초까지 태영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채무에 보증을 선 금액만 10조4570억 원에 달한다. 최근 1년만에 1조7300억 원 넘게 증가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올 상반기 기준 PF 채무와 자기자본 비율은 359.6%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IB 업계는 TY홀딩스가 담보로 내건 자산들이 KKR에 더 넘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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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 현정은 현대엘리베이(017800)터 회장이 토종 사모펀드 H&Q코리아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것 역시 향후 회사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파다하다. 현 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현대홀딩스는 올 9월 H&Q코리아에 전환상환우선주와 전환사채, 교환사채 등을 발행하며 총 3007억 원을 조달했다.
현 회장 측의 이 같은 대규모 자금 조달은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 쉰들러와 소송에서 지난 4월 최종 패소하며 비롯됐다. 당시 법원은 현 회장이 2000억 원 가량을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 회장 측은 보유중이던 현대홀딩스·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배상금을 마련했다.
백기사로 나선 H&Q코리아는 현 회장 측의 대출 만기를 앞두고 10%대 고금리에 자금을 수혈해주고 전환사채 등을 확보했다. 이렇게 확보한 사채권을 향후 모두 지분으로 전환하면 H&Q코리아가 현대홀딩스 지분을 52%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선 현대홀딩스가 3000억 원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봐도 될 것”이라며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이 사모펀드에 넘어갔다는 말들도 많다”고 말했다. 현대홀딩스는 현재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9.2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업계 일각에선 롯데건설이 메리츠금융과 올 초 공동 조성한 1조5000억 원 짜리 펀드 만기가 내년 1분기 돌아오는데 주목하고 있다. 롯데건설 역시 과도한 PF 채무 부담을 이겨내고자 당시 자본시장에 손을 내밀었다. 메리츠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펀드 후순위를 받치는 조건에 선순위로 9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수수료와 이자 등을 포함해 10%대 후반 고금리를 보장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1년이 지났지만 PF 시장이 불안한 것은 여전하다”면서 “롯데가 돈을 갚지 못하고 펀드 만기를 연장하려면 담보를 추가로 제공하거나 금리를 더 높여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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