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 서울 종로5가 인근에서 심야자율주행버스 ‘A21’번이 첫 운행을 시작했다. |
4일 오후 11시 40분께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의 한 버스 정류장. 버스전용차로에 파란색과 초록색 버스가 아닌 하얀색 버스가 들어서자 흩어져 있던 시민의 시선이 하얀색 버스 한 곳으로 모였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심야 자율주행버스’다.
서울시는 4일 오후 11시 30분부터 세계 최초로 심야 자율주행버스 정기 운행을 시작했다. 이 버스는 대학가, 대형 쇼핑몰 등이 밀집해 심야 이동 수요가 많은 합정역∼동대문역 구간을 순환한다. 노선번호는 ‘심야A21’로, A는 영단어 ‘오토노머스(Autonomous·자율적)’의 앞글자를 따왔다.
“안전벨트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버스가 출발을 못해요.” 버스에 올라서니 박상욱 자율주행 스타트업 에스유엠 부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박 부장의 말에 탑승객은 자리마다 설치된 안전벨트를 매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서울시는 심야 자율주행버스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버스 전 좌석(총 21석)에 안전벨트를 설치하고 입석을 금지했다. 시는 또 당분간 버스 내 2명의 특별안전요원을 둬 승객의 승하차를 지원하기로 했다.
심야A21 버스는 자율주행버스지만 기사가 운전석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 부장은 “현행법상 자율주행차에도 운전 기사가 있어야 하는데 기사가 자율주행에 개입하진 않는다”며 “운전 기사는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거나 뒷문을 열고 닫을 때 하차 승객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운전기사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며 ‘자율 주행’임을 인증하고 있는 모습 [연합] |
운전 기사는 버스가 자동으로 달린다는 사실을 인증하기 위해 후행 차량이 없어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운전대에서 양손을 떼고 머리 위로 두 팔을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홍대역 인근에서 운전 기사가 팔로 동그라미를 그렸을 때 시민 사이에선 감탄사와 ‘또 해달라’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운전 기사 옆 좌석엔 여러 대의 크고 작은 모니터와 이 모니터를 통해 교통 상황 등을 확인하는 ‘오퍼레이터’가 탑승했다. 오퍼레이터 역시 운전 기사와 마찬가지로 돌발 상황을 제외하곤 자율주행에 개입하지 않는다. 박 부장은 “버스 곳곳에 달려있는 센서가 자율주행 정보를 취합해 시스템 오류나 돌발 상황 등을 잡아낸다. 오퍼레이터는 이런 내용들을 운전 기사에 공유해 준다”고 했다.
자율주행에 개입하는 이는 없었지만 버스는 정상적으로 운행을 이어갔다. 횡단보도나 정류장 근처에서 급하게 정차하는 등 운행에 부족한 점도 간혹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일반 전기버스와 비슷한 승차감을 보였다.
이날 버스에서 만난 시민 다수는 세계 최초로 운행되는 심야 자율주행버스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심야 자
심야 자율주행버스를 타기 위해 일부러 밤 늦게 동대문역을 찾았다는 고현수(16) 씨와 이수환(18) 씨가 그랬다. 이들은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버스 내부 곳곳을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살폈다. 고씨는 “얼마 전 서울시 블로그에서 심야 자율주행버스 관련 글을 봤는데 직접 타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나오게 됐다”며 “버스 타고 출발지(동대문역)부터 종착지(합정역)까지 쭉 가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종로3가 정류장에서 승차한 김동선(23) 씨도 “솔직히 버스를 타기 전엔 ‘이게 과연 안전할까’라는 의심이 들긴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버스에 기사 아저씨도 있고 안전벨트도 자리마다 잘 갖춰져 있어서 바로 안심됐다. 상용화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현역에서 심야A21 버스를 탄 백모(30) 씨는 “순간적으로 멈추는 건 몇 번 있어도 험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 꽤 안정적”이라며 “노선이 확대되면 앞으로 자주 탈 것 같다”고 했다.
고씨는 “승차감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냥 흔히 타던 전기버스를 또다시 탄 기분”이라고 했다.
박 부장은 “평상시 시속 50㎞를 유지하면서 달리고 있다”며 “출발 전에 일일이 승객이 안전벨트를 착용했는지 확인해야 해 운행시간이 좀 지연될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겠다”고 말했다.
이날 심야A21 버스는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종로와 충정로, 아현, 신촌, 홍대 등을 거쳐 12시 30분께 지하철 합정역에서 총 주행거리 9.8㎞를 기록하며 운행을 마쳤다.
서울시는 내년에 청량리역까지 심야 자율주행버스 운행구간을 연장할 예정이다. 시는 운행 결과를 토대로 단거리 순환이 아닌 도심과 시 외곽을 연결하는 간선 기능의 대형 전기 자율주행버스 서비스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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