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심리상담 확대·응급대응 강화·인식개선 캠페인 등 제시
‘상담 질저하 우려·수가 인상폭 작아’ 지적…’위험환자 대책 부실’ 비판
“외래치료지원제에 구속력 필요”·”응급 대응은 필수의료로 봐야”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정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두고 환자 가족 단체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방향성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구체성이 결여됐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심리상담을 대폭 늘리는 계획에 대해서는 상담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수가 인상책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정신건강 위험환자 대응이 여전히 가족 중심이어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5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국민 100만명 심리상담 지원, 청년 정신건강검진 주기 2년으로 단축, 상급종합병원의 폐쇄병동 집중관리료, 격리보호료 등 95% 인상, 정신질환 편견해소 대국민 캠페인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자살률을 10년 이내에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혁신방안에 대해 노태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책을 시행할지 제시하지 않은 채 미사여구만 나온 것 같아 걱정된다”면서도 “환자를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게 하는 방향성이나 인식개선 대국민 캠페인은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이화영 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 계획 방향 자체는 여러가지 현안들을 다 담고 있다. 혁신안대로만 된다면 괜찮겠다 싶다”며 “다만 계획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수가 95% 인상 방안을 두고 급성기 치료 강화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5배는 올려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일 급한 것은 급성기 치료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빠르게 입원 치료를 하는 게 중요하므로 현재 마비 상태인 입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신과 진료는 아니더라도 응급만큼은 필수의료 분야에 들어가야 한다”며 “지금은 조울증이나 조현병 등이 악화하면 가족들이 몸으로 막고 있는데, 응급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도 “조현병 같은 중증정신질환의 응급 대응시스템은 지금도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부족해질 것”이라며 “건강전문요원과 경찰이 함께 출동하는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가 서울과 경기에서 운영 중이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증환자의 치료와 퇴원 후 사후관리 대책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부는 이번 혁신방안에서 중증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또 외래 치료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외래치료지원제를 활성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외래치료지원은 지금도 매년 전국에서 불과 20∼40명 정도에만 적용되고 있다”며 “의료진이 외래치료지원제를 신청할 의무도 없고 관련 인센티브도 없는데 이번 혁신안에 이런 계획조차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외래치료지원 제도가 확실하게 작동돼야 한다”며 “외국에서는 대부분 제도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없는 상황이라 병원에서도 ‘퇴원 후 병원에 잘 오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100만명 심리상담 지원’ 정책과 관련해서는 상담의 질적 수준 하락에 대한 우려와 함께 심리 상담을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확대되는 심리상담 예산이 적절한 곳에 제대로 사용될지 우려가 된다”며 “심리상담을 담당할 만한 전문가 집단이 작아서 관련 기관이 난립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리상담 확대와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률을 높이는 것이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상담치료의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건강 검진을 강화한다고 자살이 예방될까’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며 “정신건강과 관련한 우선순위 정책을 두고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을 5% 확보하는 것에 대한 플랜이 세워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기준 1.9%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5%)의 절반에 못 미친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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