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포비아'(전세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의 공급 대책이 나온지 3주도 되지 않아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터지면서 전세 시장이 불안에 떠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파트에만 수요가 쏠리면서 비아파트는 더 외면받고 아파트 전셋값은 더 오를 거란 예상이 나온다. 전세의 월세화, 주거사다리 빈약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또 전세사기?…비아파트 시장 어쩌나
최근 ‘수원 정모씨 일가족 전세사기’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비아파트 전세 시장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이 사건은 임대인인 정 모씨 일가로부터 빌라, 오피스텔 등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다수의 임차인이 이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사건의 고소인은 총 134명, 고소장 기준 피해 보증금은 약 190억원으로 전해진다. 대부분의 피해가 수원에 집중돼 있으나 정씨 부부의 소유 건물이 타지역에 더 있어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아파트 전세 포비아가 또다시 급격히 확산하는 분위기다.
앞서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빌라왕’ 등의 전세사기 행각이 줄줄이 드러난 데다 금리 인상 여파로 전세 수요가 크게 줄고 월세 전환이 늘었다.▷관련기사:[인사이드 스토리]’전세런’ 시작이라고요?(4월19일)
그러나 정부가 여러 차례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고 전세대출 금리가 인하하자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회복되고 매맷값도 오르기 시작했다.▷관련기사:[집잇슈]역전세난?…서울 아파트 전셋값 더 오른다(10월9일)
고전했던 비아파트도 저점을 찍고 서서히 올라오는 기미를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아파트에 비해선 한파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9월 누적 기준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2022년 9879건에서 2023년 2만7817건으로 181.6%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다세대주택은 2만5835건에서 1만5848건으로 38.7%, 오피스텔은 1만2383건에서 6086건으로 50.9% 각각 줄었다.
정부가 9·26 공급 대책을 통해 비아파트 중심의 공급 활성화를 예고하면서 공급 및 가격 안정 기대감이 나오는듯 했으나, 3주도 되지 않아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또 발생한 것이다.
시장에선 전세사기 충격이 당분간 영향을 미치면서 비아파트 시장의 한파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비아파트는 공급자 입장에선 수익형 상품이기 때문에 임대료를 높이는 게 이득인데 그만큼 수요가 안 받쳐주는 상황이 지속할 것”이라며 “전세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학습했고 전세보증도 갈수록 까다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전세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역전세는 무슨…갈 곳 잃은 서민들
아파트 전세시장은 오히려 ‘불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상반기만 해도 전셋값 하락으로 ‘역전세’ 현상이 예상됐다. 그러나 매매시장과 함께 수요가 회복되면서 전셋값도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6월13일(-0.01%)부터 49주째 하락하다가 5월22일(0.01%)부터 상승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가격 전망 지수도 두 달 연속 기준선인 ‘100’을 넘겼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8월 104.5에 이어 9월에도 108.1을 기록하며 ‘상승’ 전망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비아파트 시장의 수요가 아파트 시장으로 옮겨가면 가격을 더 밀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아파트 시장은 이미 전세 수요가 이탈하면서 ‘월세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9월 누적 기준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전세 거래 비중은 지난해 57.4%에서 올해 58.8%로 늘었다. 반면 다세대주택은 같은 기간 61.9%에서 53.3%로 급감했다.
이렇게 되면 서민, 젊은층의 주거사다리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원 정모씨 일가족 전세사기 사례만 봐도 피해자의 대부분이 정씨 일가와 1억원 안팎의 전세 계약을 맺은 20~30대로 알려졌다.
윤수민 위원은 “전세대출 금리가 떨어지면서 다시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해진 상황에서 아파트 전세 수요가 쏠릴수록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고 위험성이 높은 비아파트는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주거사다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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