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3주기(오는 25일)를 맞아 30년 전 그가 한 ‘신경영 선언’을 돌아보는 국제학술대회가 18일 열렸다. 신경영 선언은 30년 전인 1993년 이 선대회장이 불량품을 대폭 줄여야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질(質) 경영’ 철학 메시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한국경영학회는 삼성글로벌리서치 후원으로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삼성 내에서는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이 선대회장 추모와 동시에 그의 철학을 재조명하며 삼성 특유의 ‘초격차’ 경영을 이어나가자는 독려 메시지로 해석한다. 삼성은 학술대회 개최 취지에 대해 “고인의 리더십과 사회공헌, 삼성 신경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했다.
학술대회엔 김재구 경영학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국내외 석학, 삼성 관계사 임직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황식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이 선대회장은 기업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국가 사회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며 “신경영 정신을 재조명해 한국 기업 미래 준비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초청 연사들은 삼성 신경영을 기술, 전략, 인재, 상생, 미래세대, 신흥국에 주는 함의 등 6가지 관점을 분석하고 30년 전 신경영 선언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학술대회 1부에서는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가 각각 ‘이건희 경영학 본질은 무엇인가’와 ‘KH유산의 의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2부에서는 스콧 스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김태완 카네기멜런대 경영윤리 교수 등이 강연했다.
마틴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이 전략 이론가(Strategy Theorist)이자 통합적 사상가(Integrative Thinker)로서의 면모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사물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식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물과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삼성을 경영했다고 했다. 정답 지향, 합의 추구, 여러 대안 중 하나만 정하는 의사결정 등 ‘전통 경영’의 틀을 깼다고 했다.
김상근 교수는 문화 등 비(非)경영 분야에서 이 선대회장 사회 환원이 한국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소개했다. 이 선대회장 유족들은 2021년 미술품 2만3000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다. 감염병 및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1조원을 기부했다. 김 교수는 세금을 많이 낸 기업인은 ‘기업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한 기업인은 ‘대기업 리더’, 선의를 바탕으로 자선가로서의 면모까지 갖추면 ‘시대 정신’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이어 “이 선대회장은 이탈리아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시대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이 선대회장 3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을 했다. 이 선대회장은 백 피아니스트 해외 연주 활동을 후원했다. 백 피아니스트는 2000년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받았다.
삼성은 지난달 말 이 선대회장 주도 안내견학교 사업을 재조명해 3주기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계는 3주기와 회장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삼성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한다.
19일엔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이 선대회장 추모 음악회가 열린다. 최연소 삼성 호암상 수상자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선대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 총수 일가 참석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이 선대회장 3주기 추도식을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다. 삼성 전·현직 사장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1주기에는 수원 선영에서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추도식을 치렀다. 작년 2주기에는 유족 외에 삼성그룹 경영진 300여명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선영을 찾아 고인을 기렸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7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삼성은 이 회장 취임 1주년 행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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