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블룸버그 |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가 확대됐다. 지금까지는 고사양 인공지능(AI) 칩 수출만 제한했으나 앞으로 저사양 반도체 수출에도 제한을 가한다. 최근 중국의 화웨이가 자국산 칩으로 5G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선보이고 IT 기업들이 저사양 칩의 배열을 바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방식으로 AI 개발에 속도를 내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에 저사양 칩을 수출할 때도 라이센스를 받지 않으면 출하할 수 없게 한층 강화한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를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의 허점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 450쪽에 달하는 관련 공지문에서 인공지능(AI) 칩 등 저사양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추가로 금지하고, 미국의 무기 금수 조치 대상 회사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도 통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급 칩은 물론 그 하위단계의 반도체도 중국 수출 시 미국 정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정부가 판매를 거부할 수도 있다. AI의 인기 속에 엔비디아가 판매해온 A800·H800도 새 규제 대상이 된다.
반도체 장비는 통제 대상에 14·16나노 비평면 트랜지스터 구조 로직칩 생산에 필요한 식각·노광·증착·세정 등 12개 분야 장비를 추가했다. 중국 외 21개 우려국에 이를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외 회사를 거쳐 중국에 불법 밀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첨단 컴퓨팅칩 개발과 관련한 2개 설계회사(무어쓰레드, 바이렌) 및 그 자회사 등 총 13개 중국 기업도 ‘우려 거래자 목록’에 추가했다. MS, 아마존 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중국이 칩에 액세스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칙 제정 절차도 시작할 방침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당초 규제안에 없었던 특정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고, 수출 기준을 충족하는 AI 반도체라도 기업들의 출하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새 조치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규칙은 30일 이내 발효된다.
미국은 1년 전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며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저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 A800·H800을 별도로 개발하는 등 관련 기업은 기존 규제망에 걸리지 않는 중국용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이어갔다.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기업들의 이런 행보를 전면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새 조치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수출 규제의 허점을 보완해 중국의 군사 강화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라며 수출규제 통제가 “적어도 매년 업데이트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해치려는 것은 아니라는 표현도 섰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추가 제한 조치를 맹비난했다. 협회는 “(제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이 같은 일방적 통제는 (중국이) 다른 수급처를 찾도록 촉진하기 때문에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암(ARM)의 르네 하스 최고경영자는 이날 WSJ의 테크 라이브 콘퍼런스에 참석해 GPU는 컴퓨팅 시스템 구성 요소의 일부라면서 이번 미국의 수출통제 지침이 중국의 접근을 완벽히 차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간 저사양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해온 엔비디아는 이날 주가가 5%가량 급락했다. 인텔 등 다른 반도체주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에 포함된 30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이날 하루 총 730억 달러(약 98조9900억원) 증발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추가 제재에 강력히 반발했다.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관의 류펑위 대변인은 “미국의 조치는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게 할 뿐”이라며 “새로운 제한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확고히 보호할 것”이라며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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