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구상을 밝히는 모습 |
“이건희 선대회장은 상상력이 풍부했던 ‘전략 이론가’이자 ‘통합적 사상가’다.”(로저 마틴 토론토대 교수)
국내외 저명한 석학들이 삼성 신경영 30주년과 오는 25일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3주기를 맞아 이 선대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철학을 조명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뼈를 깎는’ 강력한 혁신을 주문하며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정신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삼성에 ‘유산’으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영학회는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1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앞줄 왼쪽 네번째), 김재구 한국경영학회장(앞줄 맨왼쪽), 로저 마틴 토론토대 명예교수(앞줄 왼쪽 다섯번째) 등 주요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하고 삼성글로벌리서치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김재구 한국경영학회장,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국내외 석학들과 삼성 관계사 임직원 등 총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선대회장의 리더십과 사회공헌, 삼성의 신경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경영·경제·인문·인권 분야의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연사로 초청됐다. 삼성 신경영을 ▷기술 ▷전략 ▷인재 ▷상생 ▷미래세대 ▷신흥국에 주는 함의 등 6가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신경영이 갖고 있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기조 연설은 지난 2017년 세계 1위 ‘경영 사상가’로 선정된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와 신학·인문학 분야 권위자인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가 맡았다.
첫번째 연설자로 나선 로저 마틴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에 대해 “전략 이론가이자 통합적 사상가”라고 평가했다.
로저 마틴 교수는 “경영의 핵심은 상상(Imagination)인데,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선대회장의 어록을 분석한 결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한 ‘전략 이론가’로서의 면모가 보인다”며 “또한, 경영의 전통적 방식인 ‘혹은(OR)’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통합적 사상가’의 특성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상충하는 대안들 중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전통적 경영 접근 방식과 달리, 개별 모델들의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각각 보다 우수한 새로운 모델의 형태로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김상근 교수는 이 선대회장에 대해 “한국의 시대 정신(The Zeitgeist)”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대규모 고용 창출로 수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면 ‘대기업 리더’, 선의에 기반한 자선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면 ‘시대정신’이라고 역사는 평가한다”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끈 시대정신이라면, 한국에서는 이건희 선대회장과 일가가 그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선대회장이 한국에 유례없는 유산을 남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은 개인소장 미술작품 2만3000여점을 국립기관에 기증하고, 1조원 규모의 의료 공헌으로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에 기여했다”며 “과학, 의료, 복지, 체육 등 다양한 비(非)경영 분야에서도 사회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신경영 선언이 오늘날의 삼성과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삼성을 이끈 9659일간 이 선대회장님은 그 누구도 가지 않은 혁신의 길을 걸으셨고, 삼성은 신경영을 통해 극심한 글로벌 환경 변화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지난 1987년 취임 후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9659일 동안 삼성을 이끌었다.
스콧 스턴 MIT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리더십은 삼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며 “경제·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 선대회장의 ‘가능성을 넘어선 창조’는 삼성뿐 아니라 한국이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은 기업의 경쟁우위에는 수명주기가 있으며,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영원한 위기 정신, 운명을 건 투자, 신속하고 두려움 없는 실험 등 오늘날의 성공 전략과 완전히 일치하는 방식으로 ‘신경영’을 수립했다”고 강조했다.
신경영에 담긴 윤리정신과 인사 전략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김태완 카네기멜런대 경영윤리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어린이집 사업에는 3가지 특징이 있다”며 “기업 홍보가 아닌 달동네를 위한 윤리적 동기에서 출발했으며, 윤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뒀으며, 인재 양성을 핵심으로 두고 진행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취임 초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 선대회장은 여성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해 다른 기업들보다 앞서 어린이집 사업을 현실화했다. 1993년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하고, 1995년에는 공채 학력 제한을 없애는 등 열린 인재 경영을 중시했다. 이 선대회장이 시행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제도는 국내 기업의 출퇴근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패트릭 라이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 교수는 “신경영은 ‘인재제일을 통해 사람과 기술을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세계적 인재 확보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