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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가 18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미술품 기증에 대해 “투자 가치가 아니라 한국미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작품을 모아 국가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날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의 기조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르네상스인(人) 이건희(KH)와 KH 유산의 의의’를 주제로 이 선대회장의 ‘KH 유산’으로 이뤄진 대규모 사회 환원의 의미를 조명했다. 이 선대회장의 유족은 2021년 이 선대회장 개인소장 미술품 2만3000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다.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점, ‘추성부도’ 등 보물 46점이 포함됐다.
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은 고(故) 이중섭 작가의 작품 중 투자 효과가 미미한 은지화를 일괄 구매해 기부했다”며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 방식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선대회장은 매일 2~3시간씩 미술 전문가들을 불러 수업을 듣고, 전시회를 직접 찾아가 작품을 탐구했다”며 “근본을 파고드는 그의 심미안은 업의 본질을 추적하려고 했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故)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1점당 30억~40억원인데 이런 작품을 1000점 넘게 기부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한국 미술의 위대함을 국민들께 널리 알리고, 이를 하나의 레퍼토리로 남기겠다는 철두철미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이 선대회장은 미술품 기증 외에도 경영 외 분야에서 많은 유산을 남겼다.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 등 의료 분야에 1조원을 지원했으며, 과학, 의료, 복지, 체육 등 분야에도 폭넓게 공헌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전례 없는 유산을 남긴 이 선대회장을 두고 김 교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家)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시대 정신”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이 선대회장은 기업가가 우리 사회를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줬다”며 “기부금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기부가 추구한 목적의 일관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금전적 기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문화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일관성을 강조해왔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의 작품 취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청자를 선호했던 이병철 창업주와 달리, 이 선대회장은 백자를 좋아했다”며 “이병철 창업주가 청자의 수려한 외모를 좋아했다면, 이 선대회장은 우리 민족이 갖는 아름다움의 레퍼토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의 영향을 보완하고 확장해 나갔다는 것이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던 신경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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