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개최
문화예술측면에서 이건희 선대회장, 유례없던 유산 남겨
삼성, 창의지향적 기업 문화 선도로 글로벌 가치 다져야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만여개의 문화재와 1500여개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기증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와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한 철학 덕분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18일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이건희 선대회장의 유족들은 지난 2021년 미술품 2만3000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및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을 위해 총 1조원을 기부하는 등 고인이 남긴 ‘KH 유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건희 선대회장의 기부는 단순한 재산 과시 목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국가에 환원했다”며 “부자들은 보통 작품을 살 때 투자 효과를 생각한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 영역을 넘어섰다. 이중섭 작품을 한꺼번에 사서 일괄 기부하는 모습에서 한국 미술사의 영향력을 국민들과 나누고자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지식 없이 무작정 작품 수집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다. 매일 미술 수업을 듣고 작품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교수는 “매일 2~3시간씩 전문가로부터 수업을 듣거나, 작품을 보러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기부한 문화예술작품이 2만3000여개라는 것은 근본부터 철두철미하게 파고 들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가. 목적이 무엇인가 묻는 근본적 질문이 삼성 신경영으로 발현되고 기업 문화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본질을 추적하고자 했던 그의 업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경영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통찰을 준다고 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문화예술 사랑은 2만3000여개의 기증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박물관의 소장품 규모도 크게 확장됐다. 대표적인 것이 정선 ‘인왕제색도’ 등 14개의 국보 기증이다.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은 8500점에서 1만점 이상으로 늘었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문화예술 사랑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병철 창업주가 청자를 좋아했다면 이건희 선대회장은 백자를 선호했다. 김 교수는 “청자가 수려한 외모를 자랑한다면 백자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며 “이건희 회장은 빼어난 외형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의 중요한 레파토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의 작품 수집에는 원칙이 있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당시 담당 직원에게 우리나라 국보가 몇 개 인지, 이중 해외에 있는 것은 몇 점인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국보를 사라”고 주문하면서 한국 사람이 경매에 참여하면 양보하고, 외국인이 나오면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했다.
김 교수는 “나라를 위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본으로 넘어간 작품 역시 평생을 걸쳐 추적해 사들여 기부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미래 삼성은 르네상스의 고향이었던 ‘피렌체’가 상징하는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고 창조성 넘치는 기업으로 나아가길 제안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있었던 프랑크푸르트는 ‘디테일의 삼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상징성이 있다. 미래 삼성에게는 피렌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퍼스트 무버로서 창의가 요구되는 시대, 여러 창조적 인물들이 탄생했던 피렌체의 상징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희 회장은 삼성 뿐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르네상스인의 정수를 내재화시키는 변화의 교량 역할을 자처했다”면서 “이건희 선대회장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家)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시대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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