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17일(현지시간) 화상 긴급 EU 정상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유럽연합(EU)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EU 내 내분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 17일(현지시간) 화상으로 긴급 정상회의가 열리긴 했으나, 균열을 수습하기는 역부족인 분위기다.
18일 외신들에 따른 최근 유럽 내 분열의 원인 중 하나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이스라엘 방문이 지목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수장이 27개 EU 회원국 정상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이 회원국 간 이견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날 긴급 정상회의에서 일부 정상들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이스라엘 방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찬사를 보낸 반면 일부 다른 정상들은 그가 회원국 정상들과 조율 없이 방문한 데 대해 불편함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27개국을 대표하며 외교안보 정책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이사회가 공식 입장을 논의하기도 전에 집행위 수장이 단독 행동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과 관련해 국제법 준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의를 마친 뒤 이번 이스라엘 문제가 “유럽인들 사이에서 많은 파편화와 분열, 양극화를 낳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회원국들이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국제인도법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연대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문제는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이번 사태 초기부터 불거진 EU 행정부인 집행위와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간 입장 불일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9일 집행위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이사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하루 만에 철회한 바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대해서도 이사회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우려한 데 비해 집행위는 직접적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이번 전쟁이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 포퓰리즘의 부상과 생활 물가 위기로 시험받고 있는 유럽의 단합을 더욱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유럽 각국은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 병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는 일제히 민간인 희생을 규탄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 어떤 것도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무고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책임자 규명을 촉구했다.
책임 규명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의원들에게 “모든 사실을 파악하기 전에 서둘러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정보기관은 독립적으로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신속하게 증거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은 “너무 많은 사람이 알 아흘리 병원의 비극적인 인명 손실에 대해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며 “잘못된 판단은 더 많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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