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에서 의대 정원의 증원 규모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2025년도 대입부터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다.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의대생을 얼마나 더 뽑을지 조율이 돼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연말까지는 의료계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얼마나 더 늘릴지 대한의사협회와 협의도 안 됐고, 의대 정원 확대 움직임에 여러 주장이 물밀 듯 쏟아지고 있다.
정부, 의료계 눈치 고려한 듯 속도 조절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반발을 고려한 듯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지방 환자의 수도권 쏠림을 막기 위해 국립대 병원의 역량을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만큼 끌어올리겠다는 게 골자다. 국립대 병원의 인건비 규제를 풀고, 병원 시설·장비에 대한 국고 지원 비율을 25%에서 75%까지 올린다. 예산 1조원을 투입해 지방·필수 의료수가를 높인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의대 정원 증원 규모는 발표되지 않았다. 의정 논의 없이 증원 규모를 발표한다면 총파업에도 나설 것이란 의료계 눈치를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 ‘필수 의료 혁신 전략’을 두고 “정부가 공백 없는 필수 의료 보장으로 국민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낙수효과가 없다는 건 1970년대 이론”이라며 “의료계 협의를 거쳐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반드시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대 정원 확대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1000명 넘게 파격 증원하려던 의지를 보이던 정부가 의료계 조율을 강조하면서 급한 불은 꺼진 모양새지만 과제는 산적하다. 적어도 내년 3월까지는 의대생을 얼마나 늘릴지 밑그림이 나와야 대학들이 2025년도 입시 모집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올 초부터 의대 정원 등에 대한 의정 논의 기구인 ‘의료현안협의체’가 14차례 열렸지만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체는 정부가 의대 정원 논의는 의료계와 한다는 ‘9·4 의정합의’ 사안이다. 고령화로 의대 정원이 크게 늘어야 한다는 정부와 저출산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료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의정 간 합의가 극적으로 성사됐다 하더라도 의대 정원 확충 방식을 두고 이해당사자 간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야권은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지역의대, 공공의대 신설 등 조건을 달고 있다. 지자체장들도 “지역 주민 숙원 사업”이라며 지역 국립의대 신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방 국립대 위주 충원 옳아”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시간이 없는 만큼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의대를 신설하기보다 인프라가 마련된 지방 국립대 의대 위주로 충원하는 게 백 번 옳다”고 지적했다.
의대를 신설하기 위해선 설립 지정 및 허가, 건축 등 과정에만 10년이다. 기초의학 25명, 임상의학 전임교수 85명 등 110명 이상의 전임교원을 확보해야 하고 병상이 500개 이상인 전공의 수련 병원도 둬야 한다. 이런 비용만 3000억원이 든다. 대다수의 의대 신설론자들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구상하지 못했다.
반면 지방 국립대 의대는 10년 이상의 환자 진료, 수술 경력이 있는 전임교수들과 의료 인프라가 확보돼 있다. 단지 서울 쏠림 현상으로 흉부외과 등 전공의 수급 확보가 어려울 뿐이다. 이 때문에 지방 국립대병원장들은 의협과 다르게 의대 정원 증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복지부는 조만간 각 의대들로부터 얼마나 정원 확대를 원하는지 수요 조사를 시작한다.
다만 현행 40%가 하방인 지방의대의 지역인재 의무 선발 비율을 더 높이는 방안이 추가돼야 수도권 쏠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해당 지역 출신 의대 학생 10명 중 8명은 지역에 남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방향성은 있지만, 확정적인 사안은 아니다”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지방 병원에 대한 지역 주민 인식도 함께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지방 국립대병원을 빅5 병원 수준으로 키우더라도 ‘큰 병은 서울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지방민 인식이 여전하면 정책의 약효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빅5 병원을 찾은 지방 환자 수는 71만명으로 10년 새 40% 증가했다. 이들 진료비만 2조2000억원에 달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KTX 등 교통 발전으로 의료 접근성이 뛰어난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정부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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