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조선 태조 이성계는 반려견을, 숙종 이순은 반려묘를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숙종의 반려묘는 이익의 ‘성호사설 4권-만물문’과 김시민의 ‘동포집(1757년경 간행)’에 ‘금묘’라고 기록돼 있다.
숙종기 왕후가 여러 번 바뀌고 후궁들의 권력서열이 변동하는 때에 맞춰, 여러 정파들의 정권교체(환국)가 반복되며, ‘정치가 사랑을 삼켜버렸던 과정’들을 금묘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당시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인경-인현-인원왕후, 한때 왕후였던 장희빈 등 숙종 부인 네 명이나 한 곳에 묻혀있는 서오릉에서 여전히 살아숨쉰다.
서오릉 야행별. 대빈묘에서 펼져친 장옥정 위로 춤사위 |
서오릉에 아직도 살고 있었다는 금묘가 ‘금손’으로 개명한 뒤 나타나, 21세기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그때의 일을 보고하는 실경사극 ‘서오릉 야별행’이 현재 진행중이다.
2023 조선왕릉문화제가 한층 재미있는 콘텐츠로 무장한채 오는 22일까지 일정으로 서오릉, 홍유릉, 동구릉, 선정릉, 태강릉, 헌인릉, 김포장릉, 융건릉, 영릉(세종대왕릉)을 무대로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해에 좋은 호응을 얻었던 융복합 공연 콘텐츠와 야행, 답사(투어) 프로그램들을 확대하고, 문화강좌 프로그램과 미디어 전시 콘텐츠를 새롭게 선보고 있는 것이다.
▶숙종의 반려묘가 전하는 이야기= 숙종이 살아생전 아꼈던 고양이 ‘금손’을 모티브로 해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서오릉의 투어 프로그램 ‘서오릉 야별행’은 매우 흥미롭다.
숙종과 숙종이 사랑했던 반려묘 금손(금묘) |
주지하다시피, 숙종(이순) 부인들의 사별, 숨막히는 내명부, 소외, 부침 과정은 잔인했고, 현재 서오릉에 있는 숙종 네 부인의 무덤 위치도 여전히 잔인하다.
명릉에 가면 노론의 전신인 집권 서인의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현왕후가 숙종과 나란히 묻혀있다. 다정한 두 봉분을 막내 정비인 인원왕후가 바로 뒤에서 지켜본다. 인원왕후는 궁중 피바람이 지나간 뒤 간택된 어린 왕비이다.
이는 영조와 대조를 보인다. 영조는 자신이 그 옆에 묻히겠다고 약속한 조강지처 정성황후릉(서오릉 홍릉) 옆자리를 비워두라고 엄명해놓고는 정작, 손녀뻘 막내정비인 정순왕후(배후 노론)와 나란히 구리로 가서 동구릉 원릉에 묻혔다.
케이스는 반대여도, 모두 집권세력 노론의 입김이 작용해 자기 정파가 미는 왕비를 왕 옆에 금슬 좋아보이게 묻은 듯하다. 영조가 가장 사랑한 영빈(사도세자 장조의 친모)은 서오릉 내 외진 곳 순창원에 묻혀있다.
숙종의 조강지처 인경왕후는 인현-숙종-인원 ‘삼각관계의 능’인 명릉에서 조금 떨어진 곳, 명릉과 숲으로 가로막힌 익릉에 묻혀 있다.
한때 왕비에 까지 올랐던 장옥정(장희빈)의 대빈묘(폐서인돼 ‘묘’라고 부름)는 이들 4인의 영령 보다 좀 더 떨어진, 더 외진 곳, 크지않은 봉분안에 묻혔다. 그나마 다른 곳에 방치돼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키운 규모이다.
▶금손, “정치적 판단은 못하겠다”= 21세기에 다시 나타난 숙종의 반려묘 ‘금손’은 문화유산 전문가이며 입담과 관객과의 소통이 뛰어난 엔터테이너이다. 그녀의 활약은 서오릉 야행별이 이번 조선왕릉문화제의 최고 콘텐츠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삼각관계 능’ 명릉 숙종과인현이 금슬좋게 나란히 묻힌 두 봉분을 사진 왼쪽 막내왕후 인원이 지켜보고 있다. |
숙종때 서인-남인-서인의 환국을 거쳐, 서인에서 분파한 노론(남인에 대한 강경 처단파)의 독재 체제가 구축된다. 남인과의 온건한 경쟁을 도모하던 소론은 오래가지 않아 자취를 감추면서 노론 독재는 훗날 영-정조의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260년 간의 노론독재는 결국 매국노 이완용와 그 종자(從者)들에게 까지 이어지며 국력쇠락과 국권피탈로 귀결됐다.
숙종 부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장희빈을 고변한 무수리 출신 숙빈최씨(노론 배후)의 등장이 한국의 근세이후 역사를 결정했다. 숙빈최씨와 숙종 사이에서 난 서자 영조 이후 1945년 해방까지, 숙빈최씨의 핏줄과 노론이 장악했다. 일제시대에도 그랬다.
▶실경 사극= 명릉에서 일반적인 왕릉의 구조 설명을 듣고 프로젝션을 왕릉 언덕에 비춰 역사동영상을 감상하고 나서, 장희빈의 대빈묘에 이르면 그녀의 음성이 울린다.
“정치는 참 나쁘다.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하고..오늘 저를 찾아주신 분들은 진실을 아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동안 장옥정의 영혼을 달래는 춤사위가 이어진다. 대빈묘를 돌아나오면서 금손은 말한다 “인현왕후도 좋으신 분인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실제 숙종 때를 배경으로 한 방송국의 사극도 장옥정의 순수한 사랑에 방점을 두는 쪽, 인현왕후의 온화함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갈린다.
인현왕후의 꼬붕이라고 불리는 숙빈최씨에 대한 묘사도 ‘발랄하고 재치있는 심부름꾼’ 혹은 ‘무수리로 궁에 들어와 신분상승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왕에게 접근하는 모사꾼’으로 묘사가 엇갈린다.
화려하게 꾸민 숙종의 조강지처 인경왕후의 익릉 |
금손은 마지막코스 익릉으로 향한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숙종의 첫 사랑 인경왕후의 묘는 특수효과로 밤꽃이 피게하고 수많은 별 또는 반딧불이가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을 연출했다.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떠난 그녀의 스무살 발랄한 인생을 저승에서나마 구가하라는 뜻에서다.
다시 ‘삼각관계’ 명릉 앞을 지나 서오릉을 떠나는 길, 여행자의 가슴은 여전히 아리고 찡하다.
▶신들의 정원, 노바스코피1437= 이제 다른 볼거리를 짚어보자. ‘신들의 정원’은 조선의 국장과 왕릉 조성에 얽힌 사건들을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3차원 세계로 표현한 공연이다. 홍유릉(홍릉) 홍살문에서 침전(제향(제사)을 지내는 건물로 황제릉에는 침전이 있음)으로 이어지는 실제 공간에 이동형 프로젝션 매핑 등의 기술을 접목하여 현장 몰입감을 극대화하였다.
영릉(세종대왕릉)에서 펼쳐지는 ‘노바스코피1437’은 1437년 세종의 객성(일정한 곳에 늘 있지 않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 관측기록에서 영감을 얻은 공연으로, 세종을 그리워하는 장영실의 마음을 아름다운 노래와 무용으로 표현하고, 두 사람이 꿈꾸던 세상의 모습을 400대의 드론으로 하늘에 그려내 관람객들의 큰 감동을 자아낼 예정이다.
왕릉음악회 |
실제 1437년(세종 19년) 음력 2월 5일 ‘미수(전갈자리 별자리)에서 객성이 14일간이나 나타났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2017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한 논문이 전갈자리를 연구하며 해당 기록을 검토하고 1437년 폭발한 신성의 흔적을 발견, 우리의 기록이 사실로 국제사회에 확인된 적이 있다.
▶고종의 핸드드립 커피, 일월오봉도 완성하기= 주간 특화 프로그램으로 커피 애호가 고종의 이야기가 담긴 ‘손흘림(핸드드립) 커피’, 정조의 효가 담긴 ‘복사꽃 손수건 제작’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강좌 ‘왕릉 아뜰리에’(홍유릉, 선정릉, 김포장릉, 융건릉, 태강릉)와 다채로운 빛과 특수효과를 활용한 야간 미디어 전시 ‘왕의 정원’(선정릉)도 신규로 선보인다.
7곳의 왕릉(홍유릉, 동구릉, 선정릉, 태강릉, 서오릉, 김포장릉, 영릉(세종대왕릉))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내 임무를 수행하고 7개의 기념품을 모으면 하나의 일월오봉도를 완성할 수 있는 ‘왕릉 어드벤처’, 국악의 선율과 풍류가 어우러진 ‘왕릉음악회’, 왕릉 숲길을 산책하며 숲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왕의 숲길 나무이야기’, 왕릉에서 휴식시간을 가져보는 ‘왕릉 포레스트(ForRest)’와 같은 다양한 대면 프로그램들을 만나볼 수 있다.
왕릉숲길 해설 |
행사 프로그램 중 ‘신들의 정원’, ‘노바스코피1437’, ‘서오릉 야별행’은 유료(티켓링크 사전예약)이며, 이 외의 프로그램들은 무료(사전예약 및 현장접수)로 운영된다.
이에앞서,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서삼릉 내 ‘효릉(孝陵)’이 공개되어 조선왕릉이 전면 개방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인 ‘조선왕릉원정대’를 지난달 선보인 바 있다.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된 40명의 원정대원들은 효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를 모두 답사하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영상 등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며 조선왕릉의 가치를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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