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난리다.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끝을 알수 없는 소아과 대기환자 명단 안내 화면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절박한 마음 한편으로 짜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줄서기를 피해 보겠다고 병원 예약 사이트를 밤낮으로 들어가고, 조부모까지 동원돼 접수하기도 했다. 아이가 많이 아플 경우 ‘응급실 뺑뺑이라도 돌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안도감이 들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의사가 2만7000여명이나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더욱 그랬다. 사회적인 이슈마다 충돌하던 정치권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거치면서도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묶여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비정상적이다. 의료 수요보다 공급이 적었고, 그 결과 의사들의 소득은 근로자보다 빠르게 늘 수 있었다. 부족한 의료진만큼 기존 의료진의 수익은 커졌다. 의사들이 수익을 좇을수록 힘들고 소송 위험이 큰 필수분야 의료진은 줄어들었다. 정원이 늘어난다면 비정상적인 의료 환경도 정상화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 소식이 전해지면서 ‘초등 의대반’ 문의가 쇄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면서 걱정이 든다. 이미 우리나라의 입시체계는 최정점에 의대가 있고, 의대 정원까지 늘 경우 우수 인력의 의대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어서다.
올해 초 국회에서 한국 반도체 신화의 산증인인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강연을 했다. “핵심 기술자 수준이 기업의 기술을 결정한다”고 역설하던 임 전 사장은 의대 쏠림 현상을 강하게 우려했다. 임 전 사장은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세세한 기술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는데, 몇천명 수준인 이 핵심 기술 인력이 나라 경제를 지키는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첨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최고의 잠재 인력들이 모두 의대를 지원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국가의 미래’까지 들먹이며 의대 쏠림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인데, 의대 정원이 확대될 경우 쏠림 현상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과학기술계 인력 공동화 현상마저 우려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 그동안 천정부지로 올랐던 의사들의 몸값이 떨어지면서 의대에 쏠림 현상은 사라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의대 쏠림 현상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왜곡 현상을 어떻게 만회할 것인지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과학 기술 인재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과학자들의 미래에 대한 보장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학계의 ‘카르텔’을 이유로 연구개발(R&D) 예산이 일괄 삭감됐다. R&D 예산은 삭감하면서 의대 인원은 늘리겠다는 방침은 정부가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든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정부가 할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또 다른 역할 가운데는 국가의 미래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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