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앞. 고층 빌딩 사이에 갈색 벽돌이 특징인 저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 우리나라 ‘1호 근대문화재’다. 1920년대 지어진 건물로,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 한복판에 근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곳곳에 국가등록문화재(근대문화재)가 숨어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근대문화재는 996개(근대건축물 포함)로, 추가로 지정되면 올해 10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근현대사 유적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2002년에 1호 국가등록문화재가 지정됐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문화재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까.
헤럴드경제는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두 달간 서울·경기도 등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남도, 경상남도, 부산, 전라남도 목포 등 전국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를 시대별로 살펴봤다.
그 결과, 근대문화재는 쉽게 훼손되고 방치되며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문화재는 폐가가 됐다. 어떤 문화재는 벽면이 부서지는 등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떤 문화재는 수풀 사이에 방치되고 있었다.
문화재 관리가 미흡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수도권에서는 도시 개발 명목하에 사라지는 문화재가, 지방에서는 지역 쇠퇴와 함께 관리 없이 방치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일부 문화재의 경우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 철거 및 수리를 하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다.
충남 아산시 음봉초등학교 후문에 위치한 윤치호 기념비. 기념비는 현재 별도 안내판 없이 수풀 속에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 아산=김영철 기자 |
전남 목포 번화로에 위치한 적산가옥. 한동안 사용되지 않아 벽면이 훼손됐다. 목포=김빛나 기자 |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1928년 12월 30일에 준공된 국내 최초의 근대적 오피스 건물로 경성전기 주식회사 사옥으로 사용됐다. [문화재청 제공] |
근대문화재는 해마다 꾸준히 새 문화재가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일 헤럴드경제가 문화재청의 연도별·시도별 문화유산 자료를 토대로 근현대사 문화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근대문화재 수가 170개 늘었다. 올해 7월 기준 근대문화재(근대건축물 포함) 수는 996건,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993건, 2021년에는 937건이었다. 첫 문화재 지정이 20년 전임을 고려했을 때 해마다 평균 50개의 문화재가 지정되는 것이다.
김기수 동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근대역사 유적은 이념적 관점이 상존하는 경우도 많아 문화재로서의 의미와 가치, 역할은 전통문화재와 결이 다르다”며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유적 등 네거티브 문화재(어두운 역사를 다룬 문화재)로, 기존 문화재가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달리한다”고 말했다.
근대문화재는 전국에 고루 분포돼 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국가등록문화재 중 건축물 유적 625개가 있는 지역을 분석해보니 근대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은 문화재 100개를 보유한 전라남도였다. 2번째로 많은 지역은 전라북도로, 76개 문화재가 있었다.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전라도지역은 근대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서울지역도 근대문화재가 76개 있었고, 경남지역이 61개로 뒤를 이었다.
시대별로는 일제강점기가 많았다. 건축물 유적 625개 중에서 일제강점기 유적은 392개로 절반이 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177개로 뒤를 이었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지닌 유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무방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근대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와 유사하게 아픔의 역사를 지닌 독일의 경우 문화재법을 제정한 보존을 필수적으로 하는 대신, 문화재 가치와 상황에 따라 문화재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해외의 경우 근대문화재 보존 대상과 방법이 다양하지만 우리나라는 단순히 ‘원형 보존’을 말하며 그 틀 안에서 해법을 찾는다”며 이렇게 제안했다.
“근대문화재는 원형 보존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들의 역사적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에 따라 보존, 유지, 활용 등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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