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지난 12일 서울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가졌다. 채텀하우스는 외교·안보 분야의 최정상급 연구기관인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별칭이다. 이번 좌담회에는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이강구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가나다순) 참석했다.
◆ 사회 = 김필수 아시아경제 경제금융 매니징에디터
국민연금 개혁이 국가적 화두다.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왔다. 왜 절실한가
올해 5차 재정계산에서 연금재정기금 소진 점은 2055년으로 나타났다. 기금 소진 이후에도 현 제도가 유지되면 2080년에는 연금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를 지출하고, 수입은 GDP의 2%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려 적자가 GDP의 7% 정도에 해당한다. 올해 GDP로 계산해도 약 160조~170조원 규모다.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국민 부담을 늘리는 방향이 될 것이다.
가입자에게 제도가 안정적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 국민연금 개혁은 꼭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돈을 부담하게 되는지에 대한 계획이 예측가능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연금제도는 70년의 약속이다. 40년 붓고 30년 혜택인데, 5년마다 계획이 바뀌는 건 말이 안된다.
(기금 소진 이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보나(※‘부과방식’은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고갈될 경우 연금 지급을 계속하기 위해 매년 가입자들로부터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걷는 방식을 의미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서 보험료를 걷어 조성한 기금으로 노인 등 수급자에게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적립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급여지출액은 올해 39조5210억원이지만 2080년에는 889조8770억원으로 GDP의 9.4%에 달할 전망이다. 다른 나라들도 부과방식으로 유지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수입구조도 함께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속가능한) 수입구조를 갖추지 못한 게 핵심이다.
지금도 부담만 안겨주는 제도로 변했는데,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미래세대가 가입할 이유가 없다.
지난 8월 연금재정계산위원회에서 18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해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미래세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계산적으로도 가능하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공정하지 않은 걸 마구잡이식으로 엮어서 시나리오로 만든 것 자체가 한마디로 전문가들의 비전문적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18개의 시나리오는 3개의 조합이다. 보험료율 인상, 연금 개시 연령 지연, 목표수익률 향상이다. 이렇게 수치를 건드리는 게 ‘모수개혁’인데, 모수개혁만으로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한 개혁안을 도출할 수 없다. 연금 재정의 지속 목표 시한을 2093년까지로만 하면 모수개혁만으로도 가능하겠으나,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모수개혁안이 필요해진다. 이와 더불어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반발이 큰데 합의를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한 방법론이 담기지 않은 한계도 크다.
18개 시나리오를 제시한 건 대안을 마련했다고 보긴 힘들다. 사실상 대안 제시를 단념한 걸로 봐야 한다. 만약 소득대체율 상향까지 포함되면 시나리오는 더 늘어난다
핵심질문인데, 제시된 시나리오 가운데 어떤 안을 선호하는지 밝혀 달라.
저는 (해당 안 가운데서 보자면) 15% 보험료 인상 정도는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이 9%이니까 단계적으로 15%까지 올리는 방안은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모수개혁뿐 아니라 구조개혁으로 나아가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재정계산위원회가 낸 18개안 중에서는 선택할 만한 대안은 없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 세대 간 형평성, 급여의 적정성 이 세 가지를 고려해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개혁안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보험료율 인상이 논의되고 있으나 젊은 세대를 이해시키려면 모수개혁만으론 어렵다. 연금을 확정기여형(DC)으로 구조개혁해야 한다. 자신이 낸 만큼 받아간다는 설득이 되어야 보험료를 더 낼 거고 지속가능성 담보가 가능하다. 보험료를 더 내고서 그에 비례해 연금을 받지 못하면 누가 보험료를 내겠나. 2024년부터 DC형 개혁으로 바꾼 뒤에 지금껏 적립되어 있는 재원을 구(舊)연금계정, 보험료를 올린 이후를 신(新)연금계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구연금계정에서의 자금 부족분은 일반 재정에서 투입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소득비례형·DC형으로 바꾸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비 하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 다른 나라는 기금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금재원이 고갈되지 않았다. 하루빨리 제도개혁을 하면 수익비가 1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모수개혁만으론 부족하다. 모수개혁을 통해 재정안정을 이룬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개인의 기여와 급여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인구 고령화가 지속되고 인구가 줄고 있다. 곧바로 DC형으로 전환하면 급여율의 대폭 하락이 불가피하다. 공적연금의 보장성 삭제를 의미하게 된다. 곧장 DC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먼저 일정 부분 모수개혁을 진행하고 (이로 인해) 보험료율이 올라가게 되면 이후에 DC형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공적연금은 세대 간 부양을 전제로 하나 지속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형평성이 되어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어느 정도 동의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했던 18가지 안은 모두 세대 간 형평성 측면에서 맞지 않다. 보험료율은 높이고 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해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해 완전 부과방식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그래야 세대 간 형평성이 만족될 수 있다. 정부 재정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인구가 줄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기금의 모자란 수익을 개선시키지 못한 문제는 정부의 책임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은 배제됐는데.(※좌담회 다음날인 13일 최종안에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와 50%로 올리는 방안 포함)
개인적으론 현행 소득대체율을 더 높이는 것에 대해선 적극 반대한다. 재정안정이 무너질 뿐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모수개혁 논의 과정에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을 담는 건 말이 안 된다. 모수는 모수대로 진행되고 이후에 구조개혁 논의 과정에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급여 적정성 부분이 얘기돼야 한다.
평생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은 경제활동 했을 때의 30% 정도다. 경제적 항상소득이라는 개념이다. 지금의 소득대체율 기준은 경제항상소득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보험료도 올려야 하고, 재정 부담도 커진다.
보험료율 인상이나 지급 개시 연령 연기는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기금수익률 인상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기금수익률을 4.5%에서 5.0%와 5.5%로 높이는 가정은 현실성이 있나.
연금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재정계산위가 제시했는데 현실적이지 않다. 제 아무리 기금의 연금 펀드매니저들의 기량이 좋아도 시장 전체의 상황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또 수익률 높이는 데만 몰두하면 주식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밖에 없어서 위험이 커진다. 수익률 자체를 기금이 추구하는 목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다수의 국가들이 제도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목표수익률이라는 개념을 갖고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000조원 가까운 기금이 쌓여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기금이 유지되면서 급여의 어느 정도를 충당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캐나다 연기금을 보면 미래세대 급여지급의 60%는 미래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 그리고 40%는 부분적립으로 쌓여있는 기금을 통해서 운용하는 걸로 방향이 잡혀 있다. 현재 쌓여있는 기금 규모와 이를 위한 수익률을 계산해서 목표수익률을 정교하게 도출했다. 우리는 단순히 목표수익률이 어느 정도인지만 제시한다. 애초에 명확한 목표 설정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수익률은 톱다운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지금의 보험료율을 15%로 올릴 경우 기금운용수익률을 어느 정도로 끌어올려야 부분적립이 얼마만큼 가능한다든지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논의가 가능하다.
모수개혁 이외에 연금 자동조절장치(기대수명 증가와 출생률 감소 등에 맞춰 연금 지급액을 자동 삭감하는 것)도입과 정년연장 논의도 나온다. 어떻게 보나.
연금 자동조절장치의 포괄적 적용은 너무 범위가 넓다. 물가 반영은 이미 적용하고 있고 수명과 급여 등을 연동하는 방안이 있을 텐데 이건 건강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영양제로 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해당하지 않는다. 재정 고갈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조절장치를 도입하면 급격한 급여 하락이 예상된다. 한국에선 무리다. 정년 연장은 논란거리다. 노후 대책을 위해 유의미하지만, 이 논의가 연금개혁에 포함되면 다른 가치 논쟁이 이어지기 때문에 복잡해진다. 연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도 소수다. 60대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자동조절장치에 대해선 토론자A님과 동일한 의견이다. 정년연장과 관련해선 실질적 개념과 법적 개념을 구분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적인 정년은 세계에서 흔치 않은 제도로 일반적이지 않으며 실질적 정년과는 큰 관계가 없다. 실제로는 60세 이상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형식적인 개념이란 뜻이다. 때문에 법정정년이 60세라는 것이 연금 개시 연령을 68세로 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진 않는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