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원 5명 중 1명은 가계부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나머지 1명은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워낙 커 향후 3개월을 봤을 때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낮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은 총재가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기준금리 연 3.5% 동결에 금통위원이 만장일치 결정을 내렸지만 향후 3개월 금리 전망에서는 이견이 나왔다고 밝히면서 한은의 딜레마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반면 4분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물가·성장 상충 기로에 대한 한은의 고민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번 금통위에서 눈에 띄는 주요 변화 중 하나는 1명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상·하방을 모두 열어놨다는 점이다. 금통위 내에서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긴축을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은 지난 4·5·7·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과 추가 인상 필요성에 만장일치 의견을 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1명의 위원이 이탈해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금리를 내리자는 의견은 아니다”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경기와 물가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의사결정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아직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이·팔 사태에 따른 변수로 첫 금리인하 의견 제시에 큰 무게를 두기는 어렵지만 향후 금통위원 간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전날 금통위 회의 직전 이 총재가 취재진에게 “논의할 게 많다”며 평소보다 긴박한 분위기를 전했던 것도 금통위원들 사이 이견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고민한 흔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긴축 유지의 필요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자칫 인하 가능성 언급이 인하 시그널로 해석될 여지가 있을까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이견이 나온 금통위원들의 포지션에 주목하면서도 전반적으로 금리인하 시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금통위 직후 기존 내년 2분기로 봤던 금리인하 시점을 내년 3분기로 수정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금통위의 핵심 포인트는 물가 목표 수렴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된 것”이라며 “총재의 기자회견은 한은이 인플레이션 안정화 경로에 대한 상승 위험이 더 크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다소 매파적이었고, 정책 긴축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인상보다 현 금리수준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매파 의원 1명, 중립 매파 의원 4명, 중립 비둘기파 의원 1명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박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구성은 인플레이션과 가계 레버리지 문제가 지속될 경우 한은의 매파적 성향이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성장 상충이 심화되면서 한은의 고민이 그만큼 더 커졌다”며 “매파 기조를 강화했지만 동시에 금리인하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한은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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