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배급사, 러에서 철수…인터넷에 스크린 녹화본 등장
바비·오펜하이머는 불법 복제품 영화관서 상영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에서 할리우드 흥행작 ‘바비’, ‘오펜하이머’에 이어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영화도 ‘꼼수’로 유통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스위프트의 콘서트를 담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가 러시아 인터넷에 불법 해적판으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영화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팝스타 스위프트가 지난 3월부터 전 세계에서 이어가고 있는 월드 투어의 공연 영상으로, 지난 13일 세계 100여개국에서 개봉되면서 또 다른 열풍을 일으켰다.
콘서트에 직접 가지 못한 팬들이 저렴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영화관으로 몰리면서 개봉 첫 주 북미에서만 ‘박스오피스 프로’ 추산 1억4천500만달러(약 1천961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등 기록적인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미국 영화 주요 배급사들이 철수한 러시아에서는 이 영화를 정식으로 상영하지 못한다.
스위프트에 열광하는 러시아 팬들에게는 아쉬운 상황이다.
스위프트는 러시아에서는 공연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팬들이 이 공연을 보려면 외국으로 ‘원정’을 떠나야 하고, 공연 티켓은 물론 항공료와 숙박비도 부담해야 한다.
러시아 팬들이 영화관에서 저렴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이 영화 개봉을 기다리는 이유다.
러시아 음악학자 우바로프 세르게이는 스위프트를 ‘모든 것을 잘하는 옆집 소녀'(한국식으로 ‘엄친딸’이란 의미)라고 칭하면서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르고 멋져 보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며 러시아에서도 인기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러시아에 해적판 스위프트 콘서트 영화가 인터넷에 떠돌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는 서방의 제재 이후 할리우드 영화들이 카자흐스탄 등 이웃 국가들을 통해 사본으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여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도 불법 복제품이 버젓이 러시아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러시아에서는 바비의 인기에 힘입어 햄버거나 의류 업체들이 바비 이벤트를 열거나 관련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러시아 당국도 해적판 영화 상영을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에서 유통 중인 스위프트 영화는 복제품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상영 중인 스크린을 녹화한 영상이어서 화질이 떨어진다고 이즈베스티야는 설명했다.
또 러시아 관객은 자막이 아닌 더빙 영화를 선호하는데, 러시아 내 스위프트 해적 영화는 더빙은커녕 자막도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매체는 “스위프트 팬들은 영화를 큰 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모스크바 여러 영화관에 연락해본 결과 스위프트 영화 상영 계획이 없었고, 가수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팬 커뮤니티는 “이 영화를 보려고 외국에 간 팬도 있다”면서 더 좋은 화질의 녹화본이나 스트리밍 서비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즈베스티야는 앞서 한국 아이돌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도 콘서트를 담은 영화를 공개해 인기를 끌었다면서 BTS 영화는 러시아 박스 오피스에서 거의 5천만루블(약 7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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