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테헤란의 혁명 광장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집회에 참석해 희생 당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상징하는 더미를 놓고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2023.10.19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확대돼 중동 전역을 휩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확전의 열쇠를 쥔 건 수년 동안 육·해·공에서 이스라엘과 조용한 ‘그림자 전쟁’을 벌여온 이란이다. 이란이 행동에 나설 경우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은 물론 ‘자국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No Boots On The Ground)’던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불길한 전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17일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 폭발로 민간인이 대거 사망하자 아랍 국가에서 반(反)이스라엘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요르단, 레바논, 모로코, 튀르키예, 리비아, 알제리 등에서 번진 시위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 거주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까지 번졌다.
시위와 더불어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주둔 미군 기지를 겨냥한 친(親)이란 무장세력의 공격 증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산발적인 교전 등 복잡한 양상이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새로운 전선을 열 것으로 우려된다.
가자지구 내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무장 조직, 레바논 내 무장 정파 헤즈볼라, 시리아 정부군, 서안지구 내 무장세력 등은 이스라엘에 맞서는 이란의 대표적인 4개 위협 세력으로 언급된다. 이번 분쟁으로 이 4개 세력이 모두 개입할 명분이 커진 셈이다.
19일 (현지시간)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충돌 고조 속 이스라엘 장갑차가 레바논 접경 지역으로 집결을 하고 있다. 2023.10.20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추가 확전 위험…”제2전선 열게 될 것”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같은 시아파 국가로 영향력을 넓혀왔다. 여기에 마찬가지로 시아파인 예멘 후티 반군까지 더해 이란 주도로 기존 질서를 뒤집는 중동 동맹을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부른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척을 져 온 이란은 하마스에도 자금, 무기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왔다.
헤즈볼라는 이란과 같은 시아파, 하마스는 수니파지만 종교적 차이점보다는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과 대척점에 있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이란과 이념을 공유하는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위험 수위가 더 높다. 헤즈볼라는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 중 창설됐다. 당시 내전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게릴라전에 나서며 세력을 키웠다. 이들은 ‘신의 당’을 의미하는 헤즈볼라를 단체명으로 채택, 이란과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지원을 받아 왔다.
아울러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는 “레바논 국경에서의 추가 확전은 매우 위험할 것”이라며 “헤즈볼라의 미사일 포격은 하마스의 가장 강력한 공격보다 더 쉽게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망을 압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과거 2006년 한달 간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소탕하기 위해 침공했지만 실패했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이전 아랍에 대한 압도적 승리와 비교해 정치적으로 졌다는 평가가 붙었다.
국제 위기 그룹(ICS)의 이란 담당자인 알리 바에즈는 유로뉴스에 “가장 큰 위험은 이란이 레바논의 동맹국, 특히 헤즈볼라를 압박해 북쪽에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선을 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바라 슬라빈 스팀슨센터 연구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을 실시하면 헤즈볼라가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해야 하고, 아마도 이스라엘 북부에 제2전선을 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대리전 형태로 크고 작은 교전을 벌여왔음에도 분쟁이 확대되지 않은 이유는 양국 모두 자신들이 상대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는 점이라고 포린어페어는 짚었다.
매체는 “양측은 관리하기 힘든 확대의 위험 없이 주기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이제 이스라엘-이란의 전면적 갈등을 가로막는 장벽 중 일부가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적인 헤즈볼라 공격,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 또는 비슷한 규모의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면 장벽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성조기(우)와 이란 국기 일러스트레이션. 자료사진.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
◇이란, 지금껏 직접 대결 피해…美, 극단 상황 아니면 개입 안할 듯
이란이 직접 군사력을 동원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독일 글로벌지역 연구소의 사라 바주반디 연구원은 이란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대신 비국가조직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바주반디 연구원은 “이란은 대리전을 만들고 수행하는 데 능숙하다. 그들은 지역 내 소위 ‘저항의 축’ 개발에 재정적, 군사적, 기술적으로 투자한다”며 “그런 무장 조직 창설과 확장에 투자하는 이유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이후 이란이 그 누구와도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이 상실될 것을 우려해서라도 직접 개입은 피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바에즈 연구원은 “만약 전면전을 벌인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것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파괴할 기회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직접 충돌할 의향이 없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유엔 주재 이란 대표단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영토, 이익, 국민에 대한 공격을 자제한다면 이란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역시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사브리나 싱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의 모든 개입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현 단계에서는 여전히 가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주된 목표는 잠재적인 적들에게 억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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