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촬영한 동영상을 근거로 재산분배 관련 소송을 냈지만, 이는 민법상 유언으로서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형제들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깨고 지난달 27일 사건을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
2남 5녀의 막내아들인 A씨는 아버지 B씨가 돌아가신 이듬해 소송을 냈다. 이미 법정상속분 규정에 따라 B씨의 토지와 건물이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분배된 뒤였지만, 자신이 더 많은 땅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A씨는 2018년 1월 B씨의 유언을 촬영한 동영상을 근거로 내세웠다. 영상에서 아버지는 소유한 땅을 A씨와 장남이 나눠 갖고, 딸들은 장남에게 현금 2000만원씩을 받으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유언은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됐다. 민법상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말하고, 자신의 성명과 유언을 남긴 날짜를 구술해야 한다. 증인과 증인의 구술도 필요하다.
B씨는 이에 불복해 2020년 11월 소송을 냈다. 해당 영상이 유언으로는 무효더라도, 증여자가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주기로 약속하고 사망 시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라는 주장이었다. 사인증여는 유언과 달리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의사 합치가 있어야 한다.
이에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통영지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반면 2심 창원지법 민사2부의 판단은 달랐다. 영상에서 아버지가 ‘그럼 됐나’라고 물었던 것과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A씨와 B씨 사이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가 유언을 통해 증여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증여의 효력을 인정하려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청약과 승낙에 대한 합의가 있었음이 증명돼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제출된 영상에서 망인이 자신의 여러 자녀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의 유언을 하였으나, 그 자리에 동석했던 일부 자녀와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어 ‘그럼 됐나’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A씨에게 물었다고 보기 어려워 유독 A씨와의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언이 효력이 없게 되는 경우 다른 자녀들과 무관하게 원고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유언대로 재산을 분배해주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볼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망인이 유언하는 자리에 원고가 동석해 동영상 촬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인증여로서 효력이 인정된다면, 재산을 분배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그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던 피고들에게는 불리하고 원고만 유리해지는 결과가 된다”며 “원심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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