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을 연상시키는 갱웨이(케이블 통로)가LS전선 동해사업장의 1동부터 4동까지를 연결한다. 해저케이블은 갱웨이를 통해 각 동을 오가며 도체를 합치고, 절연체를 만든 후 피복을 입히는 등 총 6단계의 복잡한 공정을 마친다. 완성된 제품은 초대형 턴테이블에 노란색 줄옷을 입고 꽈리를 틀듯 돌돌 말아 자리를 잡는다. 품질 검사까지 마치면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동해항으로 이송된다. 해저케이블 전용 운송선에 선적된 제품은 국내뿐 아니라 대만과 베트남 등 각지로 수출된다.
지난 19일 아시아 최대 해저케이블 생산기지인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LS전선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해상풍력발전이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으면서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생산 설비들은 쉴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해저케이블 시장은 유럽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LS전선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해저케이블 시장의 성장성을 알아봤지만, 진입은 쉽지 않았다. 2008년 LS전선은 전선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약 3000억원을 투자해 동해시에 국내 최초 해저케이블 생산 공장을 건설했고, 투자를 늘려가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LS전선은 지금까지 약 7000억원을 투입해 동해시에 차례로 2~3동까지 공장을 늘렸으며, 지난 5월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HVDC(초고압직류송전)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인 해저 4동을 준공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에 이어 세계 3위 해저케이블 업체로 부상했다.
후발주자였던 LS전선이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게 된 비결은 100% 독자기술로 생산라인을 국산화에 성공한 데 있다. 특히, 필요한 만큼 전선을 길게 만드는 해저케이블의 핵심 경쟁력 부분에서 회사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해저케이블을 이어붙인 곳이 적어야 데이터와 전력 손실이 최소화되는 만큼, 불량 없이 길게 만드는 기술력이 업체의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김진석 LS전선 설비효율화팀 팀장은 “요즘같이 일교차가 클 때는 기계가 온도에 따라 조건이 바뀌면서 불량이 만들어지기 쉽다. 불량이 나면 (만들었던 전선을) 전부 다 버려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불량이 만들어지지 않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의 턴테이블 크기 역시 업체가 얼마나 긴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데, 동해사업장에는 세계 최대급인 1만t 턴테이블을 비롯해 수천t의 턴테이블 30여 대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LS전선의 이같은 기술력은 수주로 연결되고 있다. 한 번 포설하면 보수하기가 어려운 해저케이블 특성상 고품질의 케이블을 만들어내는 LS전선에 고객들의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다.
최근 LS전선은 싱가포르 전력청으로부터 1130억원 규모의 초고압 케이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LS마린솔루션은 전남 ‘안마 해상풍력사업’ 해저케이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대만 타이베이시에 영업 거점을 설립했다. 회사는 올해 말부터 총 4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만 해저케이블 자재 및 시공 사업의 발주가 본격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 사업을 담당하는 LS전선아시아는 최근 베트남 국영 석유·가스 기업 페트로베트남의 자회사 PTSC와 해저케이블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베트남 정부는 현재 ‘제8차 국가전력개발계획(PDP8)’을 통해 2030년까지 약 6기가와트(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 265억원, 영업이익 70억원, 순이익 62억원을 기록하며 지난 20년 내 최대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달성하는 등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LS전선은 지난 8월 인수한 해저케이블 전문 시공업체 LS마린솔루션과 제조-시공 밸류체인을 강화하는 가운데, LS전선아시아를 활용해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아세안 해저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LS전선아시아는 베트남 PTSC와 현지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도 검토 중이다.
미국 진출에도 속도를 낸다. 현재 LS전선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검토 중이며 투자 결정도 임박한 상황이다. 김형원 LS전선 부사장(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은 “미국은 풍력시장 자체가 수요가 공급보다 초과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현재 미국 공장 부지선정 막바지에 있고, 동해사업장의 50% 수준으로 시작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영국을 우선적으로 검토 중이다. 김 부사장은 “유럽은 독일을 기반으로 한 내륙이 있고 영국을 기반으로 한 섬이 있는데, 영국에서 내륙쪽으로 진출하는 방향을 고려 중”이라며 “적어도 2030년 초반까지는 유럽의 해저케이블 물량이 나올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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