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에 ‘혁신’ 시작
혐오 현수막 떼고, 이재명에 회담 제안도
尹 대통령도 혐오 내려놓는 모습 보여줄
때…쓴소리 내는 인물도 안을 수 있어야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관중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살고 있던 제(齊)나라의 희공(僖公)은 포숙에게 셋째 아들인 소백(小白)을 맡기고, 둘째 아들인 규(糾)의 보필은 관중에게 맡겼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둘이 나란히 출세를 한 셈이다.
문제는 제희공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양공이 희대의 폭군이었다는 점이다. 제양공이 근친상간, 노나라 군주 암살 등의 믿지 못할 일을 저지르는 등 실정을 거듭하자 내부 반란이 일어났고 관중과 포숙은 각자 당시 주군이었던 공자 규와 소백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피신한다.
하지만 제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은 제양공과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 동시에 죽는 결말과 함께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이에 공자 규와 소백은 제나라 군주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귀향길에 올랐다. 이때 공자 소백을 없애야 자신이 모시던 규가 즉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중은 말을 달려 소백을 마주한 뒤 스스럼없이 그를 향해 활을 쐈다.
관중이 쏜 화살은 소백에게 명중했지만 허리띠의 쇠고리에 맞아 소백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소백이 쓰러지는 걸 본 관중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공자 규를 모시러 왔으나 일부러 죽은 척한 소백은 잽싸게 수도로 가서 즉위해 버렸으니 그가 제환공(齊桓公)이다.
당연히 제환공은 관중을 잡아 죽이려 했다. 그러나 포숙은 오히려 관중의 등용을 요구했다. 관중이 도망쳐 있던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제환공이 승리하고 실제로 관중이 제나라로 압송되자 제환공은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관중을 재차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포숙은 이를 만류하며 이 같이 말한다. “패자가 되고 싶다면 관중 없이는 안 됩니다. 그러니 지난 원한은 잊어버리고 관중을 과감하게 발탁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과거 자신을 화살로 맞혀 죽이려 했던 일을 잊고 관중을 재상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제환공은 관중의 말이라면 그대로 따랐고, 관중의 정치에 의해 제나라는 강성해졌다. 이 같은 관중의 재능의 힘을 빌린 제환공은 춘추시대의 최초의 패자 자리에 오르게 된다.
2000년도 전에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관중을 등용한 제환공의 일화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 꼭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큰 그릇을 가졌어도 실제로 자신을 죽이기 위해 화살을 날렸던 암살자를 용서하고 심지어 등용하기까지 제환공이 가졌어야 했을 용기가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혐오라는 감정에 끝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를 했던 자에게 가장 극한으로 향할 것이다. 아무렴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활시위를 당겨 허리띠를 맞추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가는 관중을 향한 제환공의 혐오는 세상 그 누구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大義)가 있었다. 역경을 딛고 공위에 오른 제환공에게는 어지러운 춘추시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패자(霸者)의 길을 걷겠다는 대의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던 관중을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심지어 그를 믿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처럼 혐오를 이겨낸 대의는 큰 결과를 낳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압승을 통해 국정 운영에 힘을 싣고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하겠다는 대의를 품고 있다면, 이제는 혐오를 내려놓고 포용을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국민의힘은 쇄신의 첫 걸음으로 정쟁과 혐오를 부추기는 현수막을 제거하고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을 향한 혐오를 먼저 걷어낸 것이다. 뒤이어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한 ‘민생 협치 회담’을 제안하면서 포용의 길에 나섰다.
당이 이만큼 움직였으니 이젠 윤 대통령이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 “집권 이후 지난 17개월 동안 있었던 오류들을 인정해 달라”고 읍소한 이준석 전 대표와 “당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던지는 것, 늘 기꺼이 하겠다”던 유승민 전 의원을 향한 혐오를 멈추고 그들을 끌어안는 모습 정도면 된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윤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냈고, 가끔은 내분을 조장하려했던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총선 승리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관중을 끌어안았던 제환공의 일화를 다시 읽어서라도 혐오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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