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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용 수면 측정 장치 기술이 고도화돼 의료 기록으로 활용된다면 수면 분야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클리트 쿠시다 미 스탠퍼드 의과대학 수면센터장 겸 교수)
지난 1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에 있는 스탠퍼드 의과대학 수면센터. 윤기나는 피부와 희끗한 머리로 나이대가 정확히 가늠이 안 되는 온화한 인상의 쿠시다(63) 교수가 기자를 맞았다. 그는 수면 연구의 권위자로, 세계 수면 학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수면 분야의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월드 슬립 소사이어티(World Sleep Society)’를 이끌고 있다.
쿠시다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통 대학 병원에서 진행하는 수면 검사가 이틀 밤의 수면을 측정하는 데 반해 소비자 기기의 장점은 수면 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해 일정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의료 기록으로 활용된다면 90여가지의 수면 질병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대학병원에서 수면 검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우 회당 적게는 1000달러(약 135만원)부터 많게는 6700달러(약 905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지난해 미국 의료 업체인 뉴초이스헬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체의 대학병원 수면 검사 비용은 2925달러(약 395만원)에 달했다. 국내 대학 병원 수면 검사 비용이 의료보험 적용 시 40만원대에 받을 수 있는 것보다 크게 높은 셈이다. 쿠시다 교수가 우려하는 부분도 그 점에 있다. 수면 건강은 일반적으로 뒷전이 되기 쉽지만 점차 악화돼 중년이 됐을 때 건강의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면의 질이 좋지 않으면 내분비 이상을 비롯해 심혈관계 이상과 뇌에 질병까지 야기할 수 있다”며 “환자들이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악화되지만 나중에 돌이키기는 늦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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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쿠시다 교수가 주목한 건 스마트 워치 등 착용형 기기(웨어러블)를 비롯해 스마트폰으로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앱 등 적은 비용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는 서비스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의 분당 서울대병원 연구팀과 수면 테크 스타트업 에이슬립과 손을 잡고 참가자 75명을 대상으로 소비자용 수면 측정 기기의 정확도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착용형 기기(웨어러블) 5개와 근접 기기(Nearable) 3개, 공기를 통한 측정 기기(Airable) 3개 등 11개 기기를 대상으로 했다. 연구에는 시중에 출시된 애플워치8, 갤럭시워치5, 픽셀 워치, 핏빗 센스 등이 포함됐다.
연구 결과 수면 단계를 4단계로 나눈 측정 결과 정확도 부문에서 에이슬립의 슬립루틴 서비스가 0.6863의 정확도로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창업한 신생 수면테크 스타트업이 수면 중 나는 소리만으로 측정한 수면 상태의 정확성이 가장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이 중에서도 쿠시다 교수가 높게 친 부분은 에어러블 기기의 가능성이다. 그는 “웨어러블 기기는 없어도 스마트폰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느냐”며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수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이번 주 세계수면학회 주최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월드슬립’ 학회에서 발표한다. 별도로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쿠시다 교수는 “아직은 기술적인 정확도가 대학 병원의 검사를 대체할 수준이 안 되지만 업체들마다 기술 정교화를 위해 경쟁을 한다면 환자들의 수면 기록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며 “기술의 정확도와 규제 문제가 해결되면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수면 무호흡증 환자를 치료할 때 기도양압 기기(CPAP)가 없는 환자라고 해도 이들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며 실제로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수면학 권위자는 몇 시간을 잘까
쿠시다 교수는 1977년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우연히 ‘잠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광고를 보고 한 연구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수면의 단계를 다섯 단계로 분류해 ‘수면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윌리엄 드먼트 교수를 만나 수면의 세계에 입문했다. 인터뷰 내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물어봤다. ‘수면학자인 그는 몇 시간을 잘까’. 아무래도 연구와 진료 업무가 있다 보니 최대가 7시간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컸다. 놀랍게도 쿠시다 교수는 “보통 9시 전에 잠에 들어 오전 6시 눈을 뜬다”며 9시간을 잔다고 말했다. 9시간을 자기 힘든 상황에서는 7시간의 수면은 보장해줄 것을 권유했다. 수면의 질을 위해서는 “잠들기 2~3시간 전부터 실내 조도를 낮추고 스스로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하며 루틴을 만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의 루틴으로 명상이나 스트레칭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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