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카카오가 자율 경영 체계를 손본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 역할을 확대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다. 카카오에 닥친 사법 리스크가 오너 리스크로 번지는 초유의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시세 조종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카카오 공동체 전반으로 위기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카카오의 경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김 센터장은 오전 10시 금융감독원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중이다.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은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시세 조종 혐의 등을 조사하기 위해 김 센터장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앞서 김 센터장의 복심인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된 것에 이어 수사 칼날이 김 센터장을 정조준했다.
배 대표는 친분이 있는 원아시아파트너스를 통해 에스엠 주식을 대량 매입하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혐의를 받는다. 당시 에스엠 주가가 치솟으면서 경쟁사 하이브는 에스엠 인수를 포기했다. 금융당국은 배 대표가 친분만으로 범죄 행위인 시세 조종에 나섰다기보다 배후에서 김 센터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스크가 경영진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카카오는 CA협의체를 중심으로 경영 체계 개편에 돌입했다. 각 사업 총괄이나 계열사 대표가 판단했던 신사업 추진, 인수합병(M&A) 등에 대해 CA협의체가 관여해 최종 의사 결정까지 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간 카카오는 김 센터장이 발탁한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신사업을 키우고 계열사를 독립 경영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카카오는 지난달 CA협의체 규모를 확대했다. 기존 의사결정 멤버인 김 센터장과 홍은택 카카오 대표, 송지호 전 크러스트 대표, 배 대표 외에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이사장 겸 베어베터 공동대표와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 권대열 카카오 정책센터장이 협의체 총괄급으로 합류했다. 김 이사장은 경영 지원 부문을 총괄하고 정 대표와 권 센터장이 각각 사업 관리와 위기관리 부문을 맡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CA협의체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카카오 내 추가적인 조직 개편 방안도 거론된다.
의사결정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보는 것은 카카오가 맞닥뜨린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시세 조종 의혹 사태만 봐도 카카오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넘어 공동체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단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카카오와 에스엠의 기업결합 심사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추진하는 기업공개(IPO)와 해외 사업 계획은 보류가 불가피하다. 시세 조종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나오면 금융회사인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에도 문제가 생긴다. 최악의 경우 강제 매각도 가능하다. 현재 카카오뱅크 최대주주(지분 27.17%)는 카카오다.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따르면 인터넷은행 대주주(한도초과보유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다른 주요 계열사들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안에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 택시 콜(호출) 몰아주기’ 안건을 의무고발요청 심의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안건이 의결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의무적으로 카카오모빌리티를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은 김 센터장과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 임원들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카카오의 기존 사업은 하락세다. 경기 둔화로 사업이 정체되면서 3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이 점쳐진다.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분리된 포털 다음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포털 시장 점유율과 카카오에서 차지하는 매출 기여도가 쪼그라들면서 존재감이 옅어진 지 오래다. 카카오에 사법 리스크가 번지면서 정치적 부담만 가중하는 포털 서비스를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센터장도 카카오의 경영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장에게 CA협의체의 경영 지원 총괄을 맡긴 것도 김 센터장이다. 김 이사장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센터장의 삼성SDS 입사 선배다. 1999년 이 GIO와 네이버를 설립했고 NHN한게임 대표, NHN차이나 대표 등을 역임했다. IT 업계 전반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김 센터장의 신임을 받는 만큼 카카오 공동체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간 카카오는 계열사 독립경영으로 덩치를 키웠다. 고속 성장한 계열사는 IPO 후 수익 창출에 나서는 것이 카카오식 성장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카카오 몸집이 빠르게 커지면서 기존 성장 방식과 리더십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경영진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오히려 그룹에 리스크가 됐다. 카카오 차기 수장으로 낙점됐던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는 주식 먹튀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다. 지난달에는 카카오 재무그룹장(부사장)이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해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식 성장 방식에 물음표가 달린 것은 오래된 일”이라며 “내부에서조차 ‘답이 없다’는 실망감이 나오면서 변해야 산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