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기술 경쟁력’ 주문 속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장서 잇따른 기술 성과
이재용 회장, 글로벌 오가며 광폭 행보…전장용 및 차세대 산업 반도체 수요 기대
‘신경영’ 잇는 ‘뉴삼성’ 메시지 주목…AI, 로봇 등 차세대 산업서 신규 투자 이어갈지 관심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2023년 2월 찾은 천안·온양캠퍼스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해 상생의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2022년 11월 동아플레이팅 방문 당시)
오는 27일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지 1주년이 된다.
이 회장은 글로벌 경기 불황, 미·중 갈등 증폭 등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비장한 대관식을 치렀다. 심화되는 반도체 전쟁 속 삼성의 전략을 제시하는 한편 회사 미래를 책임질 새 먹거리를 발굴해야 할 과제가 그의 앞에 놓였다.
1년이 지난 현재에도 대내외 환경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수요 부진에 반도체 시황은 곤두박질쳤고, 제2의 반도체·배터리가 될 만한 대형 M&A(인수·합병) 소식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반도체가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되면서 추격자들의 도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긴박한 상황 속 이재용 회장은 글로벌 정상들과 잇달아 회동하며, 여러 삼성 계열사 사업장 및 협력사들을 찾아 격려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였다.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와 인재 확보에도 나서는 등 365일 내내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이 회장이 다양한 경영 활동을 이어가며 여러 사업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던 지난 1년은 이건희 선대회장 ‘신경영’에 필적할 ‘뉴삼성’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북미·유럽·중동서 글로벌 정상 만나며 민간외교 '활발'
이재용 회장의 1년은 ▲글로벌 네트워크 ▲초격차 기술 투자 ▲인재 육성 ▲삼성 생태계 강화 ▲문화 발전 기여 등으로 요약된다.
그는 미국·유럽·아시아·중동 등 주요 순방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시에 글로벌 각지의 삼성 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올해 1월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UAE로부터 30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는 데 일조했다. 이에 앞서 작년 1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다양한 비즈니스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사우디 투자 유치에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로 한·일 관계 ‘해빙 무드’가 본격화된 지난 3월에는‘한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언급하며 일본과 협력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두 달 뒤인 5월에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건너간 미국에서 글로벌 CEO들과 연쇄 회동하며 3주에 달하는 해외 일정을 소화했다.
이 기간 그는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글로벌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빅테크 수장들과 만나며 IT, 반도체, 바이오·제약 산업을 심도있게 살피고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출장 말미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나며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IT업계 ‘큰 손’들과의 릴레이 회동은 이 회장이 오랜기간 축적해온 글로벌 네트워킹 능력이 빛을 발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재용 회장은 6월 베트남, 10월 중동 경제사절단 순방 일정에도 함께하며 양국 경제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특히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잇따라 성사되는 등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중동은 이 회장이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나 찾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삼성 주요 사업장 찾아 현안 점검 및 임직원 목소리 경청
이 회장은 국내외를 오가며 탄탄한 네트워킹을 다지는 것과 더불어 주요 사업장 임직원들을 찾아 소통하는 데에도 힘썼다.
지난 19일 그는 삼성전자 기흥·화성 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반도체 전략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회장은 대내외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반도체 사업이 도약할 수 있는 혁신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술 리더십과 선행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올 2월에는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시장 현황 및 중장기 사업 전략 등을 점검했으며, 한 달 뒤인 3월에는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 12월에는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하는 한편 하노이 인근 삼성 사업장을 찾아 스마트폰 및 디스플레이 생산 공장을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경영 행보 속 값진 성과가 이어졌다. 6월 초 이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의기투합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협력 물꼬를 튼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 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20’을 현대차에 2025년부터 공급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라 삼성 배터리 회사인 삼성SDI는 현대차와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추가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양사는 차세대 배터리 플랫폼 선행 개발 등에서도 협력관계를 지속할 방침이다. 이 회장은 작년 12월 올리버 집세 BMW CEO와의 회동을 통해, 전기차-배터리에서 2009년 이후 15년째 이어오고 있는 협력을 더 강화하기로 했다.
차세대 시장 주도할 기술 투자 지속…글로벌 no.1 역량 과시
고객사와의 협력이 두터워지려면 남다른 기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기술로 차세대, 차차세대를 주도할 로드맵 없이는 퀄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 물량을 가져오기 힘들다.
삼성은 올해 들어 반도체(DS 부문) 최선단 기술을 선보이며 선도업체로서의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들 반도체 제품들은 자동차, 데이터센터·인공지능·차세대 컴퓨팅 수요를 정조준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개최한 ‘삼성 메모리 테크 데이 2023’을 통해 초거대 AI 시대를 주도할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을 대거 공개하며 현 고객사 및 잠재적 고객사 어필에 나섰다.
지난 5월 12나노급 D램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는 차세대 11나노급 D램도 업계 최대 수준의 집적도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10나노 이하 D램에서 3D 신구조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단일 칩에서 100Gb(기가비트) 이상으로 용량을 확장할 계획이다.
2016년 업계 최초로 고성능 컴퓨팅(HPC)용 HBM2를 상용화하며 HBM(고대역폭메모리) 시대를 연 삼성전자는 이번에 차세대 HBM3E D램 ‘샤인볼트(Shinebolt)’를 처음 공개하며 AI 기술 혁신을 이끌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최첨단 2나노 공정부터 8인치 웨이퍼를 활용한 레거시 공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맞춤형 솔루션을 선보이며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통해 초미세 공정 전쟁에서 치고 나간 삼성은 2025년 모바일향부터 2nm 공정(SF2)을 양산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파운드리 시장 내 지각변동을 예고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도 기술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접고 미는 기술을 접목한 ‘플렉스 하이브리드(Flex Hybrid)’를 올해 초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QD(퀀텀닷)-OLED 기술도 한층 진화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고효율 유기 재료와 AI 기술을 적용해 올해 QD-OLED는 작년 제품 보다 소비전력이 25% 감소했다고 강조한다.
배터리 사업에서는 수원 연구소 내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준공하고 시제품을 생산하는 등 양산 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2027년 생산을 정조준하고 있다.
"난 JY"…인재 확보·육성 뿐 아니라 수평적 조직 문화 확산에도 기여
차세대 기술 개발은 역량을 갖춘 인재가 수반돼야 가능하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국가대항전으로 확전되면서 역량 있는 인재 발굴·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인력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삼성은 최근 스웨덴 통신장비 기업 에릭슨 출신 임원 2명을 채용한 데 이어 미국 GE 출신 윤성호 상무도 생활가전사업부로 영입하는 등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이 보다 유연하게 운영되도록 이 회장은 수평적 조직 문화 확산에도 앞장섰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평 호칭’ 범위를 기존 직원에서 경영진과 임원으로 확대했다. 회장님 아닌 ‘JY'(재용의 영문 이니셜)로 조직 문화 혁신에 한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회장의 혁신 노력은 삼성의 사회공헌 확산에서도 결실을 맺고 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세계 속에 애견문화를 널리 알리고 문화예술 ‘신성(新星)’ 육성에 앞장선 정신을 이어받아 삼성은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 삼성청년SW아카데미 ▲삼성희망디딤돌 ▲기능올림픽·기술교육 지원 ▲스마트공장 지원 ▲랩 육성 ▲나눔키오스크 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에서도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지난달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설립 30주년 행사에 직접 참석해 사회적 약자 인식 제고를 그룹 차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메세지를 던지기도했다.
지속되는 글로벌 불황…초격차 기술 발굴 및 미래 먹거리 확보 숙제
이처럼 글로벌 행보와 조직 문화 혁신에 역량을 발휘해온 이 회장은 초유의 ‘반도체 한파’를 맞아 실적을 개선하는 동시에 초격차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 삼성 반도체는 상반기에만 9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는 등 최대 부진을 겪고 있다. 반도체 위기를 수습하는 동시에 기술 차별화를 통해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 대비해야 한다는 두 가지 숙제가 이 회장 앞에 놓여있다.
삼성은 감산으로 메모리 가격 방어에 나서는 한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서 투자는 지속해 중장기 경쟁력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고용량·고사양 제품 위주의 수익성 전략으로 다가올 업턴(상승 국면)을 대비중이다.
삼성의 초격차 기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갈수록 격화되는 글로벌 전쟁을 버틸 정교한 전략을 짜야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동맹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거대 시장인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의 운명이 바뀔 수 있어서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삼성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한편 각 정부측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이재용 회장의 행보에 업계는 집중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그랬던 것처럼 이 회장은 각계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민·관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강조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외교관’인 이재용 회장의 역할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사업 외에 삼성이 신성장 사업으로 육성중인 바이오, 로봇 부문 역량 부문에서 이 회장이 새롭게 사업 방향을 제시할지도 관심사다. 연말까지 여러 대내외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 협력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하만 이후 끊긴 대형 인수·합병(M&A)에서도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현재 글로벌 각국이 반도체 기업 M&A에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후공정(패키징)에서 활로를 모색하거나 로봇,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 전략적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한편 이재용 회장 취임 1주년 당일인 오는 27일 삼성은 별다른 행사를 갖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출석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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