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발목잡은 EU… 대한항공,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 추진
“국내 항공 경쟁력 오히려 약화” 합병 반대 목소리 확대
아시아나항공, 30일 이사회서 ‘화물매각’
‘아시아나 인수’ 조건부 산은 지분 뺏길라… 조원태 불안감 커져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매각 카드를 꺼내들면서 ‘초대형 항공사’ 탄생을 기대하던 업계에서도 점차 물음표가 커지고 있다. 알짜 노선에 화물사업까지 모두 뱉어낼 경우 오히려 합병을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우려가 들끓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산은을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모양새다. 다음주 화물 분리매각과 관련해 아시아나항공이 이사회를 여는 가운데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기업결합은 물론 조 회장의 경영권 향방 역시 좌우될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30일 각각 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주요 안건은 화물사업부 매각이다.
이번 이사회는 EU가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심사 과정에서 화물 독점 방지 차원에서 요구한 시정조치와 관련, 대한항공이 화물 사업부 매각 계획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앞서 EU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4개 노선(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여객 독점 ▲ 화물 운송 서비스 독점을 우려해 시정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국내 LCC사업자에게 한국~유럽 4개 여객 노선(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운수권을 이관하고,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부를 매각하겠다는 승부수를 뒀다. 사실상 EU의 요구가 우려 요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승인해줄 수 없다는 의미인 만큼 대한항공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이같은 조치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당초 ‘초대형 항공사’를 기대하던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는 데 있다.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치며 알짜 슬롯을 반납한 데 이어 화물 사업까지 매각할 경우 경쟁력이 크게 하락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대한항공은 EU에 앞서 이뤄진 영국, 중국 등의 심사에서 알짜 노선을 대거 뱉어낸 바 있다.
반발이 가장 거센 곳은 아시아나항공 내부다. 화물사업부 매각이 이뤄지기 위해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이를 막기 위한 내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기업결합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말 열리는 이사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다. 노조는 지난달 25일 성명에서도 “항공산업의 경쟁력인 운수권과 슬롯을 마음대로 경쟁국에 내어주고 있는데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항공 주권을 포기하는 기업 결합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힌 바 있다.
전임 아시아나항공 사장단 역시 현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화물사업 매각 건을 부결해달라’는 요청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인수되지 않더라도 독자생존이 가능하며, 인수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업계에서는 내주 진행될 이사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부 매각을 부결할 경우 사실상 기업결합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U가 요구한 ‘화물 독점’을 해소할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EU의 요구를 보면 독점이 예상되는 슬롯과 화물 사업을 내놓지 않으면 승인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며 “대한항공은 국부 유출을 우려해 국내 LCC사업자에게 화물 사업을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이 매각을 거부한다면 EU의 요구를 충족시킬 뾰족한 방법은 더 이상 없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결합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숨죽여 주시하는 분위기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합병)에 100%를 걸었다”면서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 회장이 기업결합에 ‘올인’하는 것은 이 사안이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도 엮여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020년 인수합병을 결정할 당시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 경영권 다툼에서 산업은행 측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10.58% 지분을 확보했다. 산은이 지분확보로 조 회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당시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위협받던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조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산은이 갖고 있는 한진칼 지분 10.58%는 필수적이다. 조 전 부사장이 경영권 다툼 당시 결성했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과의 3자 연합은 와해됐지만, 산은이 확실한 우군으로 남아있지 않는다면 또 다른 위협세력이 등장할 경우 현재 조 회장의 우호지분으로는 방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결합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조 회장의 경영권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상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지분을 확보했던 만큼 기업결합이 무산되면 지분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 측의 지분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조 회장에게 위협 세력이 없더라도 당장 산은이 지분을 매각하면 산은의 지분만큼을 누군가에게서 메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에게서 경영권 위협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기업결합을 성공시켜 산은 지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 회장의 기업결합 성공 의지가 큰 만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EU의 요구에 적합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 측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에 대한 우려 역시 매출비중이 높지 않은 만큼 경쟁력이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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