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지영 기자] 올 들어 세 번째 주가조작 세력이 붙잡혔다. 지난 4월 ‘라덕연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강한 척결 의지를 드러냈지만, 이번 영풍제지, 대양금속 주가조작단 사건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망에 허점이 드러났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영풍제지와 같은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을 막기 위한 시장감시시스템을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풍제지 주가 조작 일당은 주로 키움증권에 등록한 계좌 100여개를 통해 영풍제지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키움증권의 영풍제지에 대한 미수거래 증거금률이 40%로 주요 증권사 중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영풍제지는 올 들어 730%나 오른 급등주다. 지난 1월 2일 5829원이던 주가는 지난 17일 4만8400원을 기록하며 큰 하락폭 없이 꾸준히 오름세를 보였다. 9월 8일에는 장중 5만4200원까지 치솟아 1월 2일 대비 829.83%가 올랐다.
영풍제지 주가는 작년 6월 대양금속에 인수된 후부터 상승세를 탔고 지난 6월엔 대양금속과 함께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오름폭이 커졌다.
그러나 2차전지주 조정 국면에도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자 일각에서는 불공정거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대양금속이 영풍제지를 인수하던 당시 무자본 인수합병(M&A)이라는 의혹을 받은 바 있는데, 그때부터 주가 오름세가 가팔라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제지의 주가 상승세는 작년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는데, 정작 주가가 급락한 뒤에 거래정지 종목으로 지정한 건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소수 계좌 관여 과다’ 등의 사유로 영풍제지를 작년 1월 이후 7차례에 걸쳐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장기간의 주가 상승으로 영풍제지를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투자경고 종목 지정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어 추가 피해를 막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감위의 시장경보제도는 영풍제지가 지정된 투자주의부터 투자경고, 투자위험 등 세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투자주의 단계에선 관련 종목 매매시 제한이 없고 개인투자자의 뇌동매매 방지와 잠재적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한 경각심만 고취한다.
가수요를 억제하고 주가급등을 진정시키는 본격적인 시장안정화 조치는 투자경고 단계에서 이뤄지는데, 문제는 주가조작 세력이 시감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견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조작 세력을 사전에 잡아야 하는 금융당국은 허술한 감시망으로 주가급락 전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셈이다.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기 위해선 주가가 3거래일 간 100% 오르거나 5일간 60% 오르는 등 비정상적인 변동이 동반돼야 한다. 또는 15거래일 중 5거래일 이상 투자주의 종목에 오르는 등 시장조치 반복지정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영풍제지는 이 조건들을 모두 피해갔다. 대양금속은 하한가를 기록하기 전 횡보세를 보여 시감위의 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투자경고 종목 지정 요건을 조금 더 낮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시감위 측은 하나의 사례로 경보 제도 자체를 개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시감위 측은 “영풍제지는 1년간 (주가가) 많이 급등한 종목이긴 하지만, 종목 하나로 경보제도 전체를 개정하는 것은 힘들다”며 “주가조작단은 시장감시 요건을 피해가려고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조직들이지 않나.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어떻게든 피해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경보는 사실 불공정거래를 적발하는 취지보다는 불공정거래를 사전에 예방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주의차원에서 환기시키는 목적이 크다”며 “영풍제지에 대한 시장경보는 충분히 많이 울렸다. 주가 급등이 있으면 시그널 예고가 있어서 쿨링다운하는 효과가 있었고 투자자 환기가 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제지는 초장기 불건전 유형에 지정될만한 사항”이라고 짚었다. 현재 시감위는 영풍제지처럼 1년간 주가 대비 200% 이상 오른 종목에 대해 필요할 경우 투자 환기가 가능하도록 매매 양태 등 불건전성을 반영한 ‘초장기 투자 경고 지정’ 요건을 신설할 예정이다. 또한 혐의계좌간 연계성 확인기법 다양화, 시장경보제도 개선 등을 통해 시장감시시스템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는 불공정거래 형태가 시장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에 일어나는 불공정거래 유형에 대비해 종합 개선방안이 개정되면 이런 종목들도 좀 더 자주 걸러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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