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키운 아이들이 이제는 말하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특별법 밖에 없습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23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에서 “사회적 참사 재난 대책 마련에는 여야와 진보·보수가 없다”며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30개 주요 과제와 173개 세부 의혹을 제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그동안 이뤄진 이태원 참사 관련 조사가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파악되지 않아 사회적 제도 개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민변은 “참사 당일 현장에 몇 명이 근무했고, 뭘 했는지도 모르는데 현장 대응의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 국정감사는 자료 미제출, 허위 답변, 무응답 등의 한계가, 특수본 조사와 형사 재판은 쟁점 사항에 치우치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변은 “진상 규명은 재발 방지의 초석”이라며 기존 조사들을 아우르는 총괄적 차원의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국정조사에서 참사 당일 정보관 파견에 대한 질의가 있었으나, 용산경찰서 측은 “2017년부터 핼러윈 기간에는 정보관을 파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용산서 관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해당 기간에 정보관을 파견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수진 변호사는 “국정조사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 굉장히 많다”며 “공판 또한 공소사실에만 집중해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은 정황에 불과하고, 추가 자료를 더 확보하거나 구체적으로 캘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참사 전후 대응과 경찰 내부 보고서 은폐·삭제 이유,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의 관련성 등을 진상 규명 과제로 꼽았다. 현재 김 청정에 관한 진상 규명은 지난 1월 특수본 출범 후 아직 검찰 수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김 청장은 핼러윈 대비 경찰 기동대를 서울청에 요청했다는 이 전 서장과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또 소방과 보건복지부 분야에서 재판으로 넘겨진 관계자가 없어 드러난 사실이 거의 없는 점도 지적됐다. 재난안전통신망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 참사 당일 응급조치 내역, 병원 이송과 사망 판정 과정 등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천윤석 변호사는 “응급환자를 우선으로 구조해야 할 구급차가 현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병원에는 사망자를 이송하고, 정작 응급환자는 그보다 훨씬 먼 곳으로 이송했다”며 “CPR이 끝난 시간 자료도 없어 사망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기록조차 없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서울시와 용산구에 대한 조사 과제로는 참사 초기 대응,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 인파 예측 실패 원인, 참사 후 임시 영안소 운영 경위 등을 제시했다. 이밖에 유가족 정보 제공 지연, 구체적 피해자 지원 대책 미비, 사망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2차 가해 등 피해자 보호 대책도 논의됐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유족들은 한숨을 내쉬거나 머리를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박희영 전 용산구청장이 수사 과정에서 “내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예측하냐”고 말한 전날 언론 보도가 소개되자 주변에서는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최종연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상 용산구는 재난 관리 책임 기관”이라며 “사전 대책회의서 명백히 인파 관리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다”고 꼬집었다.
재판 과정의 특수본 수사, 유족들의 정보공개 청구에도 관련 자료 공개가 더딘 점을 짚으며 행정심판 등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민변은 “정부 기관 협조가 미흡한데,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다”며 “조사 실효성을 담보할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특별법에 있다”고 덧붙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지난 6월 30일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8월 31일 담당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행안위를 통과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장 90일간 논의되며 본회의에 회부되고, 60일 이내에 상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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