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우선순위 기조 고수
계속되는 금리 동결에 우려도
길어지는 미국 긴축 속 ‘장고’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우선순위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가운데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지속하면서 주택 매수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전망과 중동 분쟁에 더해 잡혀가던 물가마저 반등한 상황 속 한은의 고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 긴축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2%대까지 떨어졌던 물가가 반등하자 이 같은 결정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3%대를 나타냈다. 올 1월 5.2%를 기록한 이후 지난 6월에는 2%대로 내려오기도 했다. 이후 7월에는 2.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8월 3.4%로 반등한 이후 상승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한은은 지난 2·4·5·7·8월에 이어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 연속 동결했지만 추가 인상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이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여전히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상회하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사태로 국제유가와 환율 등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향후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이 총재는 당분간 물가 안정 목표 2%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미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물가) 목표치를 바꾸면 그것 자체가 기대를 높인다”며 “일단 2%로 수렴한 이후 목표치가 적절한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 대해 한은이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고금리 상황에서도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4조9000억원 늘어난 1079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잔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가계대출을 늘리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미 대출은 늘었는데,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게 되면 이자 부담만 확대되고, 한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에 대해 정부 정책을 일부 원인으로 짚은 바 있다.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 규제 정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한 이후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경우에 생기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규제를 조금 완화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지금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을 어떻게 잘 조정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우선 (금리 인상 결정을)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상승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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