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2012) ‘블랙머니'(2019)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77)이 1999년 삼례나라 슈퍼사건을 스크린에 옮겼다. 정 감독은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용산에서 열린 영화 ‘소년들’ 언론시사회에서 “알려진 사건이지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나가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 한 슈퍼에서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주인 할머니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9일 만에 동네 소년 3인이 용의자로 검거되고 범행 일체 자백과 수사가 종결된다. 그러나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삼례나라 슈퍼사건은 올해 영화 연출 40주년을 맞이한 정지영 감독의 손에서 영화로 제작됐다. 1983년 데뷔한 정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날 정지영 감독은 “삼례슈퍼 사건을 다시 잘 들여다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보도를 통해 ‘아뿔싸’ 정도로 지나가지는 않았나. 그저 관객은 아니었나. 암묵적으로 동조한 건 아닌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마음으로는 약자들 편이라고 하지만,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을 이용해서 힘 있는 자들은 약자들을 힘들게 했다. 우리가 좀 더 숙여 봐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소년들’의 원제는 ‘고발’이었다고. 정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약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지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를 통해 나는 어디에 있나,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찾고 우리가 사는 시대를 점검하는 게 나의 취미와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꼭 희망을 이야기하더라. 절망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구나 느꼈다”고 전했다.
법정 실화를 다룬 ‘부러진 화살’, 금융 범죄를 다룬 ‘블랙머니’에 이어 ‘소년들’로 다시 한번 실화를 극으로 만들었다. 정 감독은 “혹자는 ‘한국의 켄 로치(감독)’라지만 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켄 로치는 실화에 진정성, 사실성 있게 다가가지만 저는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극적 장치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소년들’도 사실대로 가면 황준철 반장(설경구 분)은 나올 수 없다. 변호사 등이 끌고 가야 하는데, 다른 인물을 빌려 왔다. 다만 뼈대를 흩트리거나 왜곡하지는 안 돼, 극적 장치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놈 목소리'(2007) ‘소원'(2013) 등 실화 소재 영화에 출연한 설경구는 “실화가 주는 힘에 끌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그래서 끌리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극 중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황준철을 연기한 설경구는 “진범을 찾았던 익산의 황 반장을 빌려서 쓴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를 통해 이 사건을 정확히 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설경구는 또 “정지영 감독과 미팅한 지 1주일 만에 대본을 보내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처음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온 책(시나리오)을 봤는데 정리된 ‘강철중’이었달까. 그렇게 이해했다. 16~17년 후 황준철의 모습, 극 중 현재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소년들을 검거한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으로 분한 유준상은 “최우성의 욕심과 성공이 잘 담기길 바랐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허성태가 영화를 보며 펑펑 울어서 눈이 부었는데 저도 많이 울었다. 제가 한 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동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소년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하고 나서 자책하고 괴로웠다.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의문이 들면서 꾸짖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준철을 지지해 주는 아내 김경미를 연기한 염혜란은 “사건이 1999년도에 발생했다는 데 놀랐다. 대학교 졸업했을 땐데 당시 민주화가 되고 억울한 일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편안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소년들’은 11월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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