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우리가 책임집니다.” 서울 지하철 잠원역 남자 화장실에 GHB, 일명 ‘물뽕’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전단이 붙었다. GHB만 있으면 이성과 가벼운 만남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GHB는 2018년 ‘버닝썬 사건’ 당시 성범죄 약물로 알려진 마약으로 이를 구매·투약·유통하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처벌된다. 직장인 김모씨(33·남)는 “마약을 잘 모르던 사람이 전단을 보고 관심을 가질까 우려된다”며 “많은 사람이 마약을 한다고 하는데 전단을 보니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 숨어 거래되던 마약이 오프라인까지 침투하고 있다. 일상생활서 쉽게 마약 판매를 안내하는 글을 마주할 수 있어 불특정 다수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온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는 전날 홍익대 서울캠퍼스의 미술대학 건물에서 마약 판매를 안내하는 내용의 광고지가 뿌려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건국대에서도 같은 내용의 광고글이 배포돼 학교는 홈페이지를 통해 주의를 당부했다. 명함 크기의 전단엔 “영감이 필요한가? 우리는 액상대마를 판매하고 있다”며 “1g만으로 기분이 50배 좋아질 것이다. 아직 합법일 때 연락을 달라”고 영어로 적혀있었다. 뒷면엔 구매경로를 안내하는 QR코드가 있었다. 경찰은 해당 광고지를 수거하고 배포한 사람이 누군지, 실제 QR코드에 접속하는 등 마약 구매를 시도한 사람이 존재하는지 파악하고 있다.
오프라인을 통한 마약 구매 역시 유통 과정은 온라인과 비슷하다. 전화나 문자로 마약 구매를 확정하면 던지기 수법(마약 판매자가 약속한 장소에 마약을 두는 비대면 거래)으로 거래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 활용을 어려워하는 중장년층이나 온라인에 기록을 남기는 것을 꺼리는 마약 투약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프라인 마약 유통도 온라인만큼 단속하기 쉽지 않다. 온라인서는 판매자가 직접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홍보하고 판매하지만 오프라인 마약 홍보 구조는 전단을 뿌리는 사람, 홍보를 맡긴 사람, 마약을 유통·제조하는 사람 등으로 구조가 나뉘어 있다. 더구나 마약 관련 광고지를 배포하는 행위만으로는 처벌도 쉽지 않다. 마땅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마약의 제조, 매매, 알선, 유통 등은 처벌되지만 마약 판매 홍보글을 배포하는 행위만으로 마약 유통에 참여했다고 해석하긴 어렵다”며 “이런 경우 경범죄 처벌법 혐의만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은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대검찰청의 ‘8월 마약류 월간동향’에 따르면 올 1~8월 마약류 단속 건수는 1만4588건으로 전년 동기(9934건) 대비 46.8%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단속 건수(1만4696건)에 이미 도달해 올 연말에 2만건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길거리서 마약 홍보 전단을 볼 수 있다는 건 이미 마약이 대중화됐다는 증거다”며 “일상생활서 마약 광고지를 쉽게 볼 수 있으면 청소년 등 다소 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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