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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23일 혁신위원장에 인요한(64) 연세대 의대 교수를 임명했다. 4대째 한국에서 교육·의료 활동을 펼쳐온 미국 가문 출신인 인 교수는 선교사 유진 벨 씨의 증손자로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몰래 들어가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았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료한 인연도 있다. 1992년 골목길이 많은 국내 지형에 맞는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한국 의료 발전에도 기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인 교수는 대한민국 특별 귀화 1호의 주인공이 됐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꾸준히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등판한 인 교수는 김기현 대표로부터 ‘혁신의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우리 정치사에서 여야 정당은 종종 외부 명망가를 영입해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예로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은 쇄신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분란과 혼선만 자초하고 조기에 하차했다. ‘친명계’에 유리하게 전당대회 룰을 만들어 ‘비명계’의 반발을 샀고 노인 폄하 발언에 사생활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민주당을 되레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혁신위원장 외부 영입에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외부 인사를 내세움으로써 계파를 초월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당 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정당 구조상 활동 범위에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 경험과 정치력 부족 등의 한계를 지닌 인사가 총선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당을 개혁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역대 혁신위는 당 지도부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쓰이다가 버려지기 일쑤였다. ‘혁신위원회 잔혹사’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혁신은 말이 아닌 행동이 중요하다. 국민의힘이 떠나가는 민심을 되돌리려면 ‘혁신 쇼’가 아니라 가죽을 벗기는 아픔을 느낄 정도로 환골탈태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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