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한다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가장 걱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가계대출 증가 우려에 대해서는 일단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23일 한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리게 된다면 어떤 것이 가장 걱정되느냐”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금리를 추가로 올리게 된다면 현 상태에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일반 가계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부동산 대출이 주로 고소득자에 집중돼 있어 이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면서도 “부동산 PF는 금융기관과 연결돼 있어서 금융안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주택가격이 어느 정도가 돼야지 안정됐다고 보냐는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이 총재는 “구체적인 숫자를 드리기는 그렇지만 넓게 말씀드리면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10월 넘어서 11월 PF 사태 이후로 굉장히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한은 내부적으로 여러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고점 대비한 30%까지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더 떨어지면 좀 문제가 생길 것으로 검토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고점 대비 30%까지 떨어지는 정도까지는 금융기관이라든지 PF가 버티면서 지나갈 수 있는데 그것보다 더 커지면 어려움이 나타난다는 것”이라며 “그때는 경착륙을 걱정했고, 2월 금통위 의사록이 나왔을 때는 한두 달 만에 18% 떨어져서 이 추세로 하락하면 곤란하다는 인식이 있었을 때”라고 덧붙였다.
가계부채 급증 대책 질의 이어져…이창용 “규제 타이트하게”
이날 이 총재는 가계부채 급증 대책을 묻는 다수 의원의 질문에 먼저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그는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왜 올리지 않느냐”는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고금리에 따른 금융·부동산 PF 불안 등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릴 경우 물론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에 따른 금융시장 안정 문제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하고, 물가(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한 때 2.3%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한두 달 (가계부채가) 올랐다가 9월에는 줄었다”면서 “지금 판단하기에는 정책에 시차가 있어 몇 달 있다가 두고 보고 잡히는지 볼 필요가 있다”고 부언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최근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서도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 불안에 대응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이자율이나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통해 점차 가계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을 100% 미만으로, 90% 가깝게 낮추는 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당장 너무 빨리 조절하려다 보면 경기가 너무 나빠지기 때문에 천천히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정부, 한은 일시차입금으로 세수 충당” 지적
아울러 이 총재는 “정부가 한은 일시차입금으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고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정부가 연속적으로 빌렸을 경우 기조적으로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서 국회에서 한도를 정해주셔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한은 일시 대출금으로 올해 9월까지 113조 60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는 최근 10년간 정부의 일시차입금 규모를 비교해 봐도 가장 높은 수치”라며 “이자액만 보더라도 1497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9월 말에 일시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지만 악화한 세입 여건을 고려한다면 향후 차입금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역대급 세수 펑크 상황에서 한은 일시 대출금 같은 비상 수단으로는 우리 경제의 안전판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재무부가 직접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 차입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공개시장 거래를 통해서만 자금조달을 허용하고 있고 미 재무부는 연방정부의 재정정보를 월간 재정 동향 보고서 형태로 매월 발간한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반면 우리나라는 차입금이 얼마인지 다음 해에 가야 전년 연차보고서를 통해서 뒤늦게 확인이 가능하다”며 “우리도 미국과 같이 바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재정 차입금액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이 총재는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차입 기조가 안 된다는 것이 어떤 정의인지, 평잔을 의미하는 건지 이런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며 “국회 의결에 따르면 50조까지 수시로 사용을 할 수 있게 돼 있어 한도를 벗어나지 않은 쪽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 “통화정책 목표 고용안정 넣지 않는 게 보편적”
이날 국감에서는 한은 통화정책 목표에 물가안정뿐 아니라 고용안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이 총재는 “전 세계 기준으로 봤을 때는 넣지 않는 게 보편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한국은행법 제1조는 한은 설립목적과 정책목표를 ‘물가안정’으로 규정하고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한은 통화정책 목표에 물가안정 외에 고용안정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낸 상태다. 류 의원은 “(개정안은)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한은의 목적 규정에 물가안정뿐 아니라 고용안정을 넣는 내용”이라며 “한은은 단순히 물가안정만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고용안정도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저희가 이런 논의를 할 때는 물가안정이란 목표를 희석하고 나머지(고용안정)를 (추구) 할 때 얻는 장점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며 “논쟁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기준으로 봤을 땐 (고용안정을 중앙은행 목적에) 넣지 않는 게 보편적”이라며 “간접적이라도 경기를 집어넣는 중앙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제외하고는 없다. 보편적으로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 관련 십원 빵 국감장에 등장…”무형 부가가치” 주장도
이날 국회에서는 화폐 도안 저작권 침해 문제와 관련해 경주 관광 명물 ‘십원 빵’이 등장하기도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십원 빵을 들고 “화폐도 안의 영리적인 이용이라는 이유로 십원 빵 제조업체에 도면 사용 제재를 했는데, 대승적으로 풀어줄 용의가 없냐”고 물었다.
한은은 십원 빵 도면에 대해 “영리 목적의 화폐 도안 사용은 안 된다”며 제조업체를 상대로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박 의원은 “탁상머리 행정의 표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서 “웃고 넘어갈 일에 규정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해 민생에 역행하는 정책적 오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화폐 도안을 사용하려면 ‘화폐 도안 이용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자체 기준이니, 한은이 별도로 허용하면 되지 않냐”면서 “우리 문화재나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디자인이고, 추억을 자극해 소비를 촉진하는 무형의 부가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려해야 할 측면”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총재는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고려해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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