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진한 아쉬움
(항저우=연합뉴스) 설하은 기자·항저우 공동취재단 = 출발 직전, 2번 레인의 일본의 다카기 유타가 배 방향을 틀다가 전복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카기는 경기를 기권했고, 돌발 상황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로 경기는 속개됐다.
2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푸양수상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카누 스프린트 남자 카약 KL1 200m 결선을 5위로 마친 김광현(스포츠등급 KL1·전남장애인체육회)은 아쉬움에 쓴웃음을 지었다.
레이스 직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그는 “일본 선수가 물에 빠졌는데 경기가 곧바로 시작됐다.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스타트를 놓쳤더니, 기록이 안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김광현은 이날 결선에서 1분00초507을 기록했다.
기권한 다카기를 제외하면 참가 선수 중 최하위이고, 우승한 사에이드 호세인푸자로니(이란)의 기록(50초468)에는 10초039 뒤졌다.
성에 차지 않는 마무리였으나 김광현은 웃었다.
그는 “저희가 뒤에 따라올 선수들을 위해서 이 길을 닦았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장애인 카누 종목 국제 대회에 선수를 내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애인 카누는 5m 안팎 길이의 경기정에 올라타 양면 혹은 단면으로 된 노를 저어 속도를 겨루는 레이스 경기로 비장애인 카누와 거의 동일하다.
실제 경기 기록에서도 최상위권 선수들의 경우 비장애인·장애인 간 격차는 5∼10초 정도다.
다만 종목 역사의 시차는 컸다.
비장애인 카누가 약 100년 전 1924년 파리 올림픽에 등장했던 것과 달리 파라 카누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처음 시범종목으로 도입됐다.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이번 대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종목에 포함됐다.
대한카누연맹은 1983년 설립됐지만 대한장애인카누협회는 올해 1월에서야 출범했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박욱일(36)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여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자비를 털어 훈련하기도 했고, 국제 대회 때도 체계적 지원 없이 각개전투를 벌여야 했다.
어려움이 컸으나 지난해 태국에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출전권을 따내며 항저우에 입성했다.
38세이던 2009년, 모터사이클 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김광현은 2018년 처음 카누의 존재를 알게 됐고, 입문 5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지난 8월 독일 뒤스부르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그때도 그렇고 이번 항저우에서도 그렇고 나이로는 1등을 했다. 제가 52살인데 장애인·비장애인 통틀어서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고마운 마음을 고백했다.
김광현은 “저도 직장 생활하는 사회인이다. 일하면서 훈련하는 게 쉽지 않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잘렸을 텐데, 국가를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국가를 위하는 선수를 돕는 것 역시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며 배려를 많이 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아이가 셋이다. 아내에게 맡겨 놓고 (항저우에) 나와 있어 정말 미안하다”며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좋은 결과가 아니라서 마음이 아프다”고 아쉬워했다.
‘다음’을 묻는 말에 김광현은 “50대 중반이 되다 보니까 다음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저희 뒤를 잇는 선수들에게 물심양면 지원하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앞으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남자 카약 KL2 결선에 출전한 온윤호(스포츠등급 KL2·경기도장애인체육회)는 전체 7명 중 4위(47초326)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입상하지 못했다.
카약 KL3 종목에 나선 황승오(스포츠등급 KL3·경남장애인체육회)는 예선과 준결승 모두 2위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오는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황승오는 경기 뒤 “동료들 성적이 제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제가 결승에서 그 몫까지 같이 이뤄내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soru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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