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43년 만에 가장 포괄적인 협력안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심화·발전하겠다는 게 골자로 정상 간 상호 방문에서 나온 경제 협력의 실질적 이행은 물론 국방·방산 분야에서의 협력, 국제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 확대 등 총 44개의 조항이 담겼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분쟁에 대해서도 민간인 공격 반대와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 조치 등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양국 관계의 발전 방향과 지역 및 국제 현안에 대한 협력 의지를 담은 ‘한-사우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이래 43년 만에 채택된 공동성명으로 당시 나온 공동성명은 12개 조항, 2019년 공동 언론발표문도 19개 조항에 불과했다.
두 정상이 이번에 채택한 공동성명은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양국은 사우디의 ‘비전 2030’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지 및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파트너십의 상호 호혜적 성격을 확인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상급 ‘전략 파트너십 위원회’의 목적과 업무 범위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했다. 전략적 협력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실질적 경제 협력’, 공동성명 가장 큰 축… 상호 투자 확대 위한 양국 기업·투자자 지원키로
한-사우디 공동성명의 가장 큰 축은 분야별 실질적 협력 강화다. ▲교역·투자 ▲건설·인프라 ▲국방·방산 ▲에너지 ▲기후 ▲문화·인적교류 ▲신규 협력 분야 등으로 양국은 1962년 수교 이후 교역규모가 400배 증가하고 경제협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호 투자를 더욱 확대할 여지가 크다는 판단으로 수소경제, 스마트시티, 미래형 교통수단, 스타트업 등 공통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상호 투자 확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교역·투자의 경우 양측은 제조업 분야 투자가 시장 확대, 고용 창출, 기술이전 등 상호 간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조업 분야 협력을 지속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세부적으로는 무역 및 투자 분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투자 기회 제공, 시설 및 혜택 제공, 민간 부문 애로 사항 해결 등을 통해 양국 기업 및 투자자를 지속 지원·독려하기로 합의했다.
최근 우리 기업과 사우디 공공 투자기금 간 공동합작 법인을 통한 사우디 내 조립 방식의 자동차 공장 설립 계약 체결, 우리 기업과 사우디 아람코 간 합작법인을 통해 사우디 동부지역에 건설 중인 조선소 등 양국 간 제조업 분야 투자 협력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에도 주목했다.
신성장 분야는 투자 지평을 넓히기로 했다. 수소경제, 스마트시티, 미래형 교통수단, 스타트업 등 상호 관심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에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계기로 리야드에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가 개소된 데 이어 사우디 투자부와 한국 중소기업벤처부 간 협력도 지속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경제 협력 분야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건설·인프라에 대해서는 양국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상징적인 협력 분야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2023년 6월 우리 기업이 아람코가 발주한 아미랄 프로젝트 사업을 수주하고, 2023년 7월 아시아 최초로 네옴 더라인 전시회가 서울에서 개최된 게 이를 방증한다.
이에 맞춰 양측은 네옴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우디가 추진 중인 키디야, 홍해 개발, 로신, 디리야 등의 기가 프로젝트와 이에 연계된 인프라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사우디 인프라협력센터’가 개소됨에 따라 양측 간 건설·인프라 분야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방·방산 역시 한-사우디 간 협력이 다변화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분야다. 양국 간 대규모 방산 협력 논의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도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공개된 사실이다. 대공 방어체계, 화력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수출 계약이 조만간 이뤄질 전망으로 규모와 액수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에너지, 기후, 문화·인적 교류, 신규 협력 분야 등에서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에너지 분야의 전략적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교환했다.
경제 분야에서 국제 평화 논의로 확대… 중동 정세 외 예멘, 우크라 등 사태 해결 위한 파트너십 강화
경제 분야 외 국제 및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파트너십 범위를 다룬 것도 고무적인 대목이다. ▲중동 정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 ▲예멘 문제 ▲우크라이나 사태 ▲북핵 등의 국제 이슈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양측은 세계 평화와 안보 유지를 위한 협력을 지속하고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또한 이같은 사안에 대해 협력과 공동 조율을 증진하고 지역 및 국제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확립하기 위해 제반 지원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한국 측은 최근 사우디가 이란과의 관계 복원을 포함해 중동지역 내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결국 이같은 노력이 국가 주권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보전함으로써 역내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양측은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에 따라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맞춰 민간인들에게 신속하고 즉각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고자 국제 사회와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예멘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와 지역 차원의 노력에 대해 전적인 지원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국 측은 예멘 사태 당사자들 간에 대화와 화해를 독려하고자 하는 사우디 측의 노력 및 다양한 구상과 더불어, 예멘 전 지역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전달을 촉진하고자 하는 사우디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는 무고한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무력 사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음에 동의했다. 안보와 안정을 되찾고 해당 사태의 부정적 여파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사태 악화를 막는데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반도 안보 문제도 다뤘다. 국제 사회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핵·탄도 프로그램 및 무기 이전을 포함,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안보리 결의의 모든 위반을 규탄했다. 사우디 측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제안을 포함한 한국 정부의 끈기있고 단호한 노력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국빈 방문이 양국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국제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양국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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