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 11월 위드코로나 전환을 전격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리오프닝에 착수한 당시 만연했던 중국의 빠른 회복과 그에 따른 글로벌 경제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동시에 서방을 중심으로 확산한 ‘중국 위기설’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은 완만한 회복을 통해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부동산 시장이나 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이면 중국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인할 수 있는 변곡점이 찾아올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확실성이 제거된 상황에서, 앞으로의 성과는 최고 지도부와 행정 당국의 역량이 순도 높게 반영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압박과 공급망 재편·제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같은 외부 리스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여의치 않다.
고개 든 경제…시장은 ‘선방’ 호평
전망률 낮췄던 주요 기관도 다시 상향조정
중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에 대한 대외적 평가는 지난 1년간 널뛰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5.0% 안팎’으로 발표하자, 시장은 달성 가능성을 염두에 둔 다소 보수적 접근이라고 봤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성장률이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6.3%에 그치며 시장 전망치(7.3%)를 크게 밑돌자, 여론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중국의 상황을 견주며 장기 저성장을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 경제를 ‘시한폭탄’이라 표현했고, 뉴욕타임스와 CNN 등 주요 언론은 향후 몇 년간 중국은 상당히 괴로울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지난 18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올해 3분기 성장률은 4.9%를 기록했다. 시장의 예상치(4.4%)를 상회한 수준이다. 이에 따른 올해 3개 분기 누적 성장률은 5.2%로, 중국이 남은 4분기 지난해보다 4.4% 정도만 성장한다면 올해 목표치를 달성하게 된다.
올해 3분기 성장률을 분기별로 살펴보면 주요 도시들의 강한 회복세가 감지된다. 중국이 ‘세계 최대 자유무역항’으로 개발 중인 남부의 하이난성의 성장률은 9.5%에 달했고, 북부 네이멍구 자치구는 7.2%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경제적으로 고비를 겪었던 랴오닝성은 5.3% 성장하며 10년 만에 전국 평균을 앞질렀다. 이밖에 같은 날 발표된 지난달 산업생산(4.5%)과 소매판매(5.5%) 모두 시장의 예상을 웃돌았다. 같은 달 실업률은 5.0%를 기록, 지난 2021년 10월(4.9%) 이후로 가장 낮았다. 지난 20일 중국 인민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 우대금리(LPR)를 동결한 것도 경제 상황이 나름의 궤도에 안착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은 중국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니콜라스 라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7월 규제 당국은 적어도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를 종료했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민간 투자가 여전히 전체 인터넷 산업 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결국 기업가 정신을 독려해야 한다는 중국 지도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가 2030년에 미국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고 2011년 저서를 통해 주장했던 인도 정부 수석 경제고문 출신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은 “현재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성취한 것은 인류가 본 것 중 가장 큰 경제적 기적”이라면서 “여전히 남은 10년여간 중국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므로, 기존 예측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주요 기관도 올해 GDP 성장률을 앞다퉈 상향 조정했다. 시티그룹은 5.0%에서 5.3%로, JP모건은 5.0%에서 5.2%로, 모건스탠리는 4.8~4.9%를 5.1%로 올려잡았다. UBS와 노무라증권도 5.2%, 5.1%를 제시하며 각각 종전 대비 0.4%포인트, 0.3%포인트 높였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기존 전망치(5.4%)에서 5.3%로 오히려 0.1%포인트 낮췄다.
부동산 리스크 현재진행형…기업發 위기감 고조
이·팔 전쟁으로 더 복잡해진 미·중 관계
이 같은 성과는 중국 정부의 본격적인 통화·재정·부동산 부양책 강화에 집중한 데 따른 소비 심리·기업 환경 개선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시장의 경우 당국의 노력에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업계발 리스크는 더욱 부각되는 분위기다.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은 18일 유예기간이 종료된 달러 표시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수순에 돌입했다. 비구이위안은 1860억달러의 부채를 보유해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 중 부채가 가장 많다. 헝다그룹은 채권자들이 제안한 구조조정 조건을 일부 수정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달 말 예정됐던 파산 관련 청문회도 미뤄졌다. 여기에 1선 도시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 시행에 따라 중소도시의 경기는 더욱 나빠지는 풍선 효과가 시장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
중국 현지 애널리스트들과 업계는 당국이 연내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시장을 자극하고 수요를 회복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은 2015년 부동산 경기 침체 당시에도 지역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시기는 통상 부동산 성수기로 인식되는 가을을 전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교하면, 현재의 상황은 당국의 통제 하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출자가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대출 시 20~30%의 예금을 예치하도록 하고 있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라디 연구원은 중국 최대 은행인 중국공상은행의 지난해 말 전체 부실 대출을 1.38%로 보고했으나, 주택 모기지 채무 불이행은 0.39%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을 대내 위험 요소로 본다면 대외 최대 위험 요소는 미국과의 불안한 관계다. 중국은 지난 20일 갈륨·게르마늄에 이어 이차전지 주요 소재인 흑연까지 수출 통제 목록에 올렸다. 이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이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중 수출통제 기준 확대 조치를 발표한 뒤 나온 것이다. 미국이 군사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중국 반도체 제조시설을 압박하자,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의존도가 높은 필수소재를 틀어쥐며 맞불을 놓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도 중국의 외교·정치 노선을 복잡하게 만든다. 중국은 그간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미국을 견제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 따라 미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에 나서면서, 사실상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옹호하는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이 됐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중 관계 악화라는 악재가 좀처럼 사라지기 어려운 가운데, 시장은 내년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해리머피 크루즈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경제회복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면서 “부동산 시장 악화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검은 구름이 머리 위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긍정적 거시 데이터와 취약한 부동산 심리 사이의 괴리로 인해 올해 4분기에 추가 부양책 없이는 향후 경제 회복세가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봤다.
장쯔웨이 핀포인트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이제 정부의 초점은 내년 성장 전망으로 옮겨갈 것”이라면서 “정부가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인지, 재정 완화는 얼마나 이뤄질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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