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우리나라 물가 수준이 스페인·포루투갈 등 일부 유럽 국가들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 인플레이션 위기가 도래했던 지난해까지는 비교적 물가 오름세가 완만했으나, 결국 기저효과를 토해내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거가 사라지면서 당분간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서민 부담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내수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스페인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3.5%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같은 달 3.7%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이 0.2%포인트 더 높다. 포르투갈도 3.6%를 나타내 우리나라보다 0.1%포인트 낮은 인플레이션 수준을 나타냈다. 벨기에(2.4%)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크다.
지난해까지 대부분 유럽 국가보다 물가를 잘 방어했던 대한민국이 점차 그 격차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은 지난해 3월 우리나라보다 물가 상승률 수준이 5.7%포인트 높았다. 포르투갈은 지난해 11월 4.9%포인트를 상회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그 차이가 좁혀지더니, 이젠 상황이 반전됐다.
당연히 유럽연합(EU)과의 물가 상승률 격차도 좁아지고 있다. 9월 EU 물가는 4.9%를 기록했다. 1.2%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6.1%포인트까지 났던 격차가 올해부터 급격하게 줄었다.
미국(3.7%)과는 인플레이션이 동률을 이뤘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가 0.03%포인트 정도 더 높다. OECD 통계는 상세 소수점을 제공한다. ‘주요 7개국(G7)’ 평균 물가 상승률과의 격차도 이에 지난 8월 기준으로 0.8%포인트로 좁혀졌다. 지난해 3월 2.8%포인트까지 나던 차이가 이젠 소수점 한자리까지 떨어졌다. 9월엔 더 근소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기저효과 영향이 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잘 방어했기 때문에 올해 수치가 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저효과를 이겨내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잘했다’는 성과도 퇴색된다. 일부 ‘조삼모사(朝三暮四)’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금리 정책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낮은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해왔다. 당분간 고금리 상황이 계속될 수 있고, 일부 추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 등 주요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4.5%다. ECB는 작년 7월부터 10회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0.25%였던 기준금리 상단을 공격적으로 인상해 지난 7월 22년 만에 최고인 5.5%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한국은행은 지난 2·4·5·7·8월에 이어 지난 19일 기준금리를 다시 3.50%로 묶었다. 이와 관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먼저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계속되면 가계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미 2분기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383만10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8% 줄었다. 처분가능소득은 전체 소득에서 이자와 세금 등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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