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년들 10명 중 8명은 비혼동거 등 전통적 가족 개념을 벗어난 새로운 가족 형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족’ 개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사회 인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통계청의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인식변화’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가운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비중은 지난해 기준 36.4%에 불과했다. 청년 3명 중 1명만 결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는 2012년(56.5%)보다 20%포인트 넘게 줄어든 수치다.
반면 지난해 청년 10명 중 8명(80.9%)은 비혼 동거나 비혼 출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비혼 동거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61.8%) 보다 늘었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비혼 동거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형태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가족과 관련된 현행법들은 혈연으로 이뤄진 전통적 가족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어 새로운 유형의 가족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비혼 동거 가족은 보호자로서 수술동의서에 환자 본인 대신 서명을 할 수 없다. 대부분 병원에서 현행 민법에 따라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정도만 서명을 할 수 있는 보호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휴가 및 가족 돌봄 휴가, 전세대출이나 주택청약 등 가족을 위한 지원이나 대책도 ‘법적 가족’을 전제하고 있다보니 새로운 유형의 가족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유럽은 이미 비혼 동거 가족 등 법적 부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 유형들 보호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프랑스가 도입한 결혼 제도인 ‘팍스(PACS, Pacts Civil De Solidarite)’ 제도가 대표적이다. ‘시민 연대 계약’이라고도 하는 팍스는 프랑스 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커지면서 1999년 제정됐다.
프랑스에서 팍스를 맺으면 국가에서 발급하는 증명서에 팍스 여부가 기록된다. 이에 따라 팍스를 맺은 가족은 세액공제, 건강보험, 비자, 양육수당 등에서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연금이나 상속, 재산 분할 등은 결혼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어 법적인 보장은 받지 못하지만 이는 별도 공증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제정 당시 “동성애를 정당화 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팍스를 맺은 동성 커플의 비율은 2%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성별과 무관한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국가는 프랑스 외에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스위스 등이 있다”며 “사회적 현상으로서 발생하는 비혼 동거가족의 유형을 생활동반자로 포섭해 법제도로서 보호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최준석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범의 원칙에 근거해 국가는 모든 구성원의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며 “생활동반자법 제정 등 우리나라도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국회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동성애를 허용한다는 반대 주장이 거세 향후 입법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출생률 감소, 비혼 및 1인 가구 증가 등을 이유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등은 “동성혼 허용법”이라며 입법을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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