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태광그룹이 또다시 오너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이 수십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경영일선 복귀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 그러나 복권 두 달 만에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부각되며 이같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 경찰,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자택·사무실 등 압수수색…광복절 특사로 복권 두 달만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24일 오전 이 전 회장의 자택과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있는 태광그룹 미래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태광CC를 압수수색 중이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은 이번 압수수색 대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회장은 태광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 20억원 이상을 조성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태광 계열사 중 하나인 골프장 운영업체가 다른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앞서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섬유제품 규모를 조작하는 ‘무자료 거래’로 총 421억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여원대를 포탈한 혐의 등으로 2011년 구속 기소됐다. 이후 이 전 회장은 구속된 지 불과 두 달여 만인 2011년 3월 간암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고, 이듬해 6월엔 아예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황제 보석’이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2018년에는 병보석 중에 이 전 회장이 외부에서 음주와 흡연을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는 2018년 12월 병보석 취소 결정이 내려지면서 7년 9개월 만에 재수감됐다. 구속부터 병보석 취소까지 8년 동안 그의 실제 수감기간은 63일에 불과했다.
이 전 회장은 이후 징역 3년을 확정받아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지난 8월에는 광복절 특사를 통해 복권됐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 당시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국가 발전에 힘을 보태고 경제 활성화 이바지로 국민 여러분과 정부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태광그룹, 특별감사 이은 고강도 인사 조치…이 전 회장 경영 복귀 전 ‘내부 기강 잡기’ 평가도
이 전 회장이 특사로 복권되면서 사실상 경영일선 복귀는 시간 문제로 여겨져왔다. 이 전 회장은 여전히 최대주주로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 지분 29.48%, 흥국생명 지분 56.3%를 소유하고 있다. 흥국화재는 흥국생명이 40.06%, 태광산업이 39.13%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태광그룹이 최근 전 계열사 감사를 포함해 전반적인 조직 재정비에 나선 것도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앞둔 정지 작업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태광그룹은 최근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주요 안건을 논의하는 경영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김기유 티시스 대표가 해임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이호진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혀왔던 인물이다. 김 전 대표를 비롯해 김명환 흥국화재 전무, 김민 흥국자산운용 상무 등도 해임 또는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의 해임을 두고 각종 추측이 나온다. 최근 롯데홈쇼핑 사옥 매입 과정 등에서 오너인 이 전 회장과 갈등을 빚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롯데홈쇼핑(전 우리홈쇼핑)은 지난 7월 이사회에서 임차해 왔던 서울 양평동 사옥을 2039억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롯데홈쇼핑의 태광그룹 지분은 태광산업(27.99%)과 티시스(6.78%) 등이다.
태광그룹 측은 당시 이사회에서 사옥매입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사면 이후 반대 입장으로 바꾸고, 법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에 나선 것이다. 이에 이 전 회장이 롯데홈쇼핑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책임을 김 전 대표에게 책임을 물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광그룹의 전 계열사 감사를 놓고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 전 회장이 경영 복귀를 앞두고 ‘내부 기강 잡기’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의 경영 공백 기간 동안 업무를 총괄했던 이른바 ‘실세’들에 대한 고강도 인사 조차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잃어버린 10년’…ESG 중심 경영 체제 개편 등 조직 재정비 나서
태광그룹은 최근 전사의 전반적인 조직 재정비에도 나섰다. 태광그룹은 지난 16일 경영협의회 산하에 미래위원회를 신설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 경영 체계 구축과 함께 그룹의 비전과 사업전략 수립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이사회 중심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도 구축키로 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를 위해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흥국화재 이사회에는 ESG 위원회를 설치한다.
매달 열리는 경영협의회 아래 미래위원회를 둬 계열사 대표를 중심으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 전사를 아우르는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특히 과거 이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논란이 됐던 만큼, 지배구조 선진화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태광그룹을 대상으로 주주 캠페인을 벌여온 트러스톤자산운용도 태광그룹이 발표한 ESG 중심 경영체제 구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에 이어 지분 5.89%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이성원 트러스톤 ESG운용부문 대표는 “태광산업 미래위원회가 그룹의 비전과 기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며 후속 조치와 그 실행을 통해 태광그룹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발표가 구두에 그치지 않고 효율적이고 내실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될 수 있도록 제도 및 조직 개편 등 후속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소수 주주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에 진정성 있게 귀 기울여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사법 리스크로 이 전 회장의 공백기가 길어지며 태광그룹의 지난 10년은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난 2011년부터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사업 투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2020년에는 태광그룹이 수년간 공들였던 티브로드도 SK브로드밴드로 넘어갔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액이 1조원가량 떨어졌다. 영업이익은 4000억원대에서 내림세를 그리며 지난해 122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 재계 30위권이었던 태광그룹의 순위는 올해 52위까지 추락했다.
재계에선 이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강력한 오너십을 기반으로 태광그룹 내 신사업 등에 대한 투자가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됐다. 이 전 회장이 과거 M&A 명수라는 평을 들을 만큼 투자를 통한 사세 확장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20여 개 지역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다. 2005년에는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러나 또다시 횡령·배임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며 이 전 회장의 경영일선 복귀는 제동이 걸렸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태광그룹과 계열사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제기된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경찰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