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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채택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총 44개 조항에 걸쳐 양국 협력의 폭을 넓히기 위한 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포스트 오일 시대’를 함께 열어갈 청사진을 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동성명에는 에너지 안보 및 건설·인프라 협력과 같은 전통적인 영역은 물론 수소경제, 스마트 시티, 스타트업, 스마트팜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양국의 협력 강화 의지가 명문화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온 ‘무탄소 연합’에 대한 사우디 측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대통령실은 24일(현지 시간) 윤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양측의 ‘미래 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심화시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우디는 정상 공동성명을 잘 내지 않는 편”이라며 “이번에는 아주 이례적으로 포괄적인 성명이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수단을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설치된 ‘한·사우디 전략 파트너십 위원회’의 목적·임무·협력 범위를 구체화하고 ‘한·사우디 비전2030 위원회’의 역할도 확대하는 방식이다. 양국 경제협력 다각화를 위한 양국 정상의 의지도 공동성명에 담겼다. △수소경제 △스마트 시티 △스타트업 △스마트팜 등 미래 산업을 위해 함께 투자하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양국 정부는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수소 오아시스 협력 이니셔티브’에 서명했다. 양국 정부·기업 사이에는 총 156억 달러(21조 원)에 달하는 계약·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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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측으로부터 ‘무탄소 연합’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중요한 성과다. 원전 수출의 포석이 될 수 있는 데다 수소 기술에 대한 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어서다. 공동성명문에는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을 비롯한 다양한 접근법에 양측은 공감했다”며 미래 에너지 체계를 선도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K방산에 대한 사우디의 수요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성명문에도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대응을 위한 안보 협력”이라는 문구가 반영됐다. 윤 대통령 역시 사우디 순방 마지막 날 사우디 국방장관과 국가방위부 장관을 만나 방산 협력을 논의했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우디와의) 대규모 방산 협의가 논의 막바지 단계”라고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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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공동성명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물론 북핵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한·사우디 양국이 함께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가 2024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국제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두 국가 해법’을 윤 대통령이 공식 지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우디의 대(對)이란 관계 복원 노력을 지지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사우디와 이란 관계가 복원되면 이란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중동 정세가 안정되는 등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사우디가 한국의 ‘담대한 구상’을 지지한 것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이란으로 이전되는 것을 경계하는 사우디 측의 계산이 깔린 행보라는 분석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전날 ‘한·사우디 건설 협력 50주년 기념식’을 마친 뒤 네옴시티 전시관을 둘러보는 와중에도 ‘세일즈 외교’를 이어갔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네옴시티 ‘더라인(The line)’의 일부 구간이 산악 지형 때문에 끊겼다는 설명을 듣자 “터널 뚫는 것은 한국 기업이 최고”라고 말했다. 이에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은 한국 기업 세일즈에 단 1초도 낭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화답해 좌중의 호응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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