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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돋보인 ‘중동외교’… 정치ㆍ경제 역동성 살릴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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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중동방문은 시기·장소·성과의 3각구도에서 이뤄진 소위 ‘3위1체’ 외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세계는 3가지 큰 충격을 경험해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이후 공급의 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원자재(상품) 가격 급등이 그것이다. 이 일련의 거대한 충격은 이미 끝난 것일까? 팔레스타인 이슬람 조직인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격렬한 공격과 가자지구 분쟁은 그 대답이 ‘아니오’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채권시장의 혼란도 여전히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최신 세계경제전망(WEO)은 자신감을 주는 동시에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세계 경제는 탄력성을 보였지만, 당초 예상에 비해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경제성장률 격차가 심화되면서 장기적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세계는 여전히 대혼란과 격변의 시대이다. 윤 대통령은 이때 지정학적 리스크가 돌출된 중동의 한복판에서 외교전을 펼쳤다. 이는 외교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중동 리스크를 현장에서 관측하고 그 해소를 위해 능동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였다.
 윤 대통령의 최종 행선지인 카타르를 보자.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와의 충돌을 둘러싸고 중동 걸프만의 소국(小國) 카타르가 인질 석방의 중재자로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카타르는 미국, 하마스 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향후 협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이뤄진 미국 국적 모녀 2명의 인질 석방에서 하마스는 “카타르의 노력에 부응해 인도주의적 이유로 석방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21일에도 새로운 인질을 석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카타르에 통보했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측은 부인하고 있다.
 카타르는 하마스의 모체가 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 ‘무슬림 형제단’과 관계가 깊다. 대중운동을 중시하는 무슬림형제단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위험하게 여기지만, 카타르는 이를 지원해 왔다. 서방 언론에 따르면, 하마스는 2012년부터 카타르에 해외 거점 사무소를 개설했고, 지도자인 하니야는 오래전부터 카타르에 머물고 있다. 한편, 카타르는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영내에 미군 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과 아랍 국가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을 활용해 인질 석방 협상을 중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카타르의 하마스와의 관계를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0일 미국인 2명의 석방에 대해 카타르의 “중요한 지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카타르는 이전부터 주변국 무장세력이나 서방과 대립하는 이란과도 깊은 관계를 맺는 독자적인 외교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소국이지만 자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조직인 탈레반과도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을 때 미국, 유럽 각국 대표들이 자국민 피난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창구로서 카타르와의 협력을 위해 도하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과의 관계에서도 미국과의 핵합의 재협상을 중재하는 국가 중 하나로, 지난 9월 미국이 이란의 자산을 동결 해제할 때 그 자금을 카타르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 이후 미국은 자산 사용을 중지하기로 카타르와 합의했다. 이러한 관계가 카타르에 위험요소가 되어 2017~2021년 사이 이란과 무슬림형제단과 적대적인 사우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이 카타르와 단교했다. 윤 대통령의 카타르 방문에 왜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대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역시 사우디 국빈 방문은 이번 중동외교의 핵심이다. 한·사우디 협력의 신세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할 만큼 큰 성과를 일궜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야기된 유가 급등을 염두에 두고 사우디가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인도적 지원 등 필요한 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우디의 미래도시 네옴(NEOM) 등 대규모 개발 구상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포스트 석유 시대를 맞아 “한국은 사우디의 최적의 파트너”라며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제안했다. 수소 생산과 유통, 활용 등에서 협력을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식품과 의약품 분야 협력도 양해각서를 맺었다. 회담 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투자 포럼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첨단 기술을 가진 한국과 풍부한 자원과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사우디가 손을 잡으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인프라 수출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국 기업이 사우디의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사업 등에서 총 46건의 투자-수주 계약과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는데 이는 중동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한국은 정부 주도로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석유공사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 석유 비축사업 공동 추진 계약을 체결했고, 한국전력과 포스코홀딩스 등이 아람코와 암모니아 생산사업에서 협력한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현대건설이 사우디 투자부와 부동산 개발 등에서 협력하고,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에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현대차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PIF와 손잡고 부품과 반제품을 조립하는 ‘녹다운 방식’의 자동차 공장 설립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해 산업 다각화 등을 골자로 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도적으로 수립한 장기 경제계획 ‘비전 2030’에서는 인프라 확충과 국내 제조업 발전 등을 내세우고 있다.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내다보고 수소 등 청정에너지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일본 등을 탈탄소 연료의 미래 공급처로 삼고 있으며, 관련 기술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방문에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 소프트웨어산업협회(조준희 회장)는 지난주 별도 동선으로 UAE 아부다비를 방문했다. UAE의 AI(인공지능)와 디지털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오마 술탄 알 올라마 UAE AI·디지털 경제부 장관, 두바이 상공회의소 회장 등 UAE와 두바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협력에 대해서 논의했다. 오마 술탄 알 올라마 장관과 두바이 ‘Expand North Star 2023’ 행사에 참가한 10여 개 한국 기업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한국 기업 60여 개사가 부스를 차렸다. 아부다비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가 지난 9월 최신 대규모 AI 모델 ‘팔콘 180B’를 발표했다. 그 성능에 전 세계 기술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ATRC는 연내 정부 AI 기업 출범을 발표할 예정이며, 대화형 AI ‘챗 GPT’를 개발한 미국 오픈AI 등 이 분야 강자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한다. ATRC 산하 응용연구기관 ‘기술혁신연구소(TII)’는 74개국 국적 약 800명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 주제는 생명공학, 로봇공학에서 양자컴퓨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19년에 설립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도 이에 가세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중동 민간경제 외교의 한 축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모습도 이번 윤 대통령의 중동외교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한가지 눈여겨봐야 할 이벤트가 있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중동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GCC)가 지난 2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무역 확대와 기후변화 대책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조직 하마스의 충돌이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의 정세도 논의했다.
 아세안에서는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등 9개국 정상이 참석했고, GCC에서는 개최국인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롯해 카타르의 타밈 수반 등 총 6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회의 서두에서 “우리는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모든 분야에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상황을 언급하며 “슬픔을 느낀다”며 전투 중단을 촉구했다. 조코위 대통령도 국제법에 따른 충돌 해결을 촉구했다.
 양 지역은 1990년대부터 관계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각료급 회의는 열렸지만, 정상회의는 처음이다.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신흥-개발도상국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운데 경제와 외교에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있다.
회의에서는 가자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을 둘러싸고 양 지역 정상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공동성명에서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촉구했다.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GCC는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가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밝히는 등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고, 아세안은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다. 이번에는 입장 차이를 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조속한 휴전을 촉구한 것이다.
 아세안은 성장을 위해 GCC에 대한 수출 확대를 요구해 왔는데, 2021년 아세안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금액 기준 전체 16%)과 미국(15%)이 크고, GCC에 대한 수출은 아직 미미하다. GCC 국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고유가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정부계 펀드 등을 통해 해외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산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제조업 등이 많은 아시아는 GCC의 유력한 투자처이며, 경제 발전이 지속되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특히 성장 시장으로 꼽힌다. 이러한 아세안과 중동국가의 경제협력공동체 움직임도 새로 포착된 망외(望外) 의 소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외교강화와 확대에서 창출하고 있는 여러 성과들에 이어 이번 중동순방 성과는 ‘하이 리스크 지역에서 하이 리턴’을 발굴하는 신외교로 풀이할 수 있다. 중동순방 외교가 국내 정치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CP-2023-0070@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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