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길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 행사를 맞아 이태원을 방문한 청년 등 158명이 비극적인 압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난 24일 오후 5시 무렵 찾은 서울시청광장 한켠에는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가득 붙은 보라색 벽이 서 있었다. 이 벽에는 ‘안전한 일상을 바란다’ ‘함께하겠다’ ‘기억하겠다’ 등 각종 추모의 메시지가 붙어있었다.
이곳은 10.29 이태원 시민대책회의(이하 시민대책회의)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서울시청광장에 마련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추모공간이다. 시민대책회의는 16일부터 2주 동안을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1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분향소 존치를 두고 싸우고 있다.
추모의 벽 옆 부스에는 포스트잇과 펜이 준비돼 있어 기자도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주최 측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 고리와 스티커를 건네줬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도 진행 중이었다. QR코드 스캔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증강현실 추모의 별을 띄운 게시글을 올릴 수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5번 출구 쪽에는 이태원 참사의 실상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진열됐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해당 내용을 확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많아”
━
|
이날 서울시청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는 오후 6시부터 ‘재난참사 가족들이 말하는 우리 사회 이야기’라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분향소에서 만난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추모주간 동안) 다양한 추모행사를 진행한다”며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에서) 자체적으로 사건 실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오는 27일 상영하고 오는 29일에는 행진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자신의 자녀가 왜 나체로 인계됐는지, 동의 없이 금융기록이 왜 조회된 것인지 등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밝혀지지 않은 일이 많다”며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창단은 행사 시작 전 분향소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몇몇 사람들은 분향소 앞에 헌화한 뒤 묵념했다. 추모 행사 준비가 한창인 분향소 바로 옆에서는 전라남도 직거래장터 큰잔치가 열렸다. 큰 광장에서 흥을 돋구는 음악이 나오는 동안 협소한 분향소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유족 측이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두 공간을 바라보니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얼마나 작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민중가수, 노동자·시민 합창단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시민대책회의 상황실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행사마다 (다양한 공연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며 “오늘은 여러 합창단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평화의나무합창단’의 마연숙 대표는 “(평화의나무합창단은) 시민으로 구성된 합창단으로 사회 곳곳에 힘든 분들을 찾아가 공연하고 있다”며 “이태원 참사 추모 행사에는 이번이 세 번째 참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족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한다”며 “오늘 행사에 참석한 합창단원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유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
━
|
“우리가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한번쯤 되돌아봐 주길 바랍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분향소에 내걸린 보라색 별 장식이 환하게 빛났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최민석씨의 어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 시절 민석이가 생각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희가 왜 기억해달라고 울고, 외치고, 단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받고 폭풍 속에서 3보1배를 하겠나”라며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모이면 (여전히 힘들지만) 밥을 먹을 수 있고 웃을 수 있다”며 “그래서 추모 공간이 필요하고 (이런 공간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희를 위해 힘써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밖에 방송가의 노동환경을 고발했던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태의 부위원장 등이 참여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한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늦은 저녁 시간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추모행사에 끝까지 함께했다. 몇몇 참석자들은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면서 행사장을 지켰다. 이날 행사는 오는 29일 진행될 추모행사를 예고하면서 저녁 7시40분쯤 막을 내렸다.
퇴근 시간에 열렸던 이날 행사에 시민들도 관심을 보였다. 시청역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잠깐 멈춰서서 행사를 지켜보거나 추모 공간을 둘러봤다.
고등학교 2학년인 여학생 3명은 “근처 학교 학생인데 지나가다 추모 행사가 열려서 (이곳에) 들렀다”며 추모공간을 살펴봤다. 이들은 포스트잇에 붙은 추모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행사에 참석한 한 합창단원(여·30대)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참담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추모행사에서 (우리가) 힘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