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는 쉽게 정쟁으로 번진다. 그 안에서 희생자는 위로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이전의 참사가 그러했듯, 이태원 참사도 닮은꼴이었다. 진상규명 요구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캐묻는 사람이 있었고, 그런 이들은 재발방지대책 요구에 침묵했다. 2022년10월29일 참사로 159명의 삶이 멈추어 선 지 1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누군가의 시계는 아직도 1년 전에 멈춰서 있다. ‘지금 우리 이태원이야(창비)’는 그런 유가족, 생존자, 친구, 이태원 주민·노동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명의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구술을 풀어냈다.
책의 특징은 흔히 유가족으로 대변되는 부모가 아닌 형제자매, 애인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에 가려 쉽게 간과되었던 형제자매, 연인,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그 슬픔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드러낸다.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간담회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참사 초기 슬픔에 빠져 부모들이 슬퍼할 때 아이들은 슬픔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어 원망 됐는데 나중에 알게 됐다. 그 슬픔 자체가 감내하기 힘들었고, 부모에게 슬픔을 더 보태주고 싶지 않아 감내했던 거다. 그걸 글로 남긴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필에 참여한 유해정 활동가는 “장례식장에서 형제자매와 마주한 어른들이 ‘살아남은 너희들이 잘 해야 한다’며 잊혀질 고통처럼 말한다. 형제자매 슬픔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것 같다”며 출간 동기를 설명했다.
구술자로 참여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의현 씨의 누나 김혜인 씨는 동생 의현이가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란 기록을 남기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며 “(동생이) 왜 그곳에 갔는지 보다, 그곳에서 왜 못 돌아왔는지를 기억하자”고 어머니의 말을 빌려 당부했다. 희생자를 향한 비난을 멈춰달라는 요구다.
이어 “유가족으로서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왜 매년 하던 핼러윈 축제 인파 관리를 하지 않았고, 왜 사고 초기에 신고 전화를 무시했고, 왜 사고 후에 처리 과정이 불투명한지, 왜 책임자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해정 활동가는 “유가족이나 피해자가 안간힘을 살아내는 시간을 시민이 무심하게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슬픔과 고통보다는 사랑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며 “재난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성취는 그들의 희생이 우리사회를 바꿨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정민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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