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는 농식품부, 불호령에 ‘동분서주’
해수부·산업부도 현장 달려가 동향 점검
尹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민생 챙겨라”
업계는 부담 커져…득보다 실이 큰 행태
‘고물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가 민생을 챙기기 위해 중앙부처 고위관료를 내세워 밥상물가 안정 현장 행보에 나서고 있다. 다만, 단순히 가격 인상 시기를 뒤로 늦추거나 지나친 시장 통제가 이어질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부처에서 물가 잡기에 동분서주한 곳은 농림축산식품부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지난 26일 원부자재 상승세에도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있는 서울 목동 소재 피자알볼로 본사를 방문해 물류 수수료 등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인하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피자알볼로는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전 제품 평균 4000원가량의 가격을 내렸으며 최대 6500원까지 인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이날 오후엔 서울 aT센터에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등 소비자·외식 7개 단체장과 물가안정 간담회를 가졌다. 한 차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물가 상황을 공유하고 외식물가 하락 기조 유지 및 조속한 물가안정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에게 물가 모니터링 협조를 요청했다. 한 차관은 “외식업계는 전사적인 원가절감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지난 24일 CJ제일제당 인천 1공장을 찾았다. 설탕 재고를 점검하고 원당 할당관세(3%→0%) 적용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여기서도 농식품부는 숨 가쁜 행보를 보였다. 국제설탕가격과 주원료인 원당 가격이 지난해보다 각각 35%, 48% 오르는 등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5일에는 이마트 세종점을 방문해 설탕·유제품·제과·제빵 등 가공식품 전반에 대한 가격 동향과 할인행사 등 판매 동향을 살폈다.
해양수산부도 현장에 달려갔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지난 26일 부산 사하구 수산물 냉동창고를 찾아 수입업계 동향을 점검했다. 최근 고등어 가격이 1년 새 20% 가까이 오른 탓이다. 앞서 지난 20일에는 경기 용인에 있는 천일염 가공업체 ‘대상’ 물류센터를 방문한 뒤 가격 인상을 최대한 흡수하는 등 협조를 당부했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산품 가격 점검 회의를 열고 물가 안정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이날 필요하다면 품목별 점검 회의 및 현장 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중앙부처의 현장 행보는 밥상물가가 좀처럼 안정적으로 돌아서지 못해서다.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참모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설탕 물가 상승률은 전체 물가 상승률(3.7%)의 4.6배에 달했고, 가공식품 물가와 외식물가는 전년 대비 각각 5.8%, 4.9% 상승했다. 연초보다 하향세를 보이지만 전체 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셈이다.
앞으로 계획된 일정도 많고 ‘현장 점검’이라는 명목을 붙였지만, 업계 생각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위적인 가격통제와 인상 시기를 뒤로 늦추는 압박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유통업계 관계자 A씨는 “정부 고위관료가 직접 달려와 시작가격을 압박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며 “보여주기식 민생 챙기기는 악영향으로 돌아와 결국 소비자만 피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사실상 가격 통제에 부담을 느끼다 보니 정부부처의 전방위적 압박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위관료가 몽둥이를 들고 물가 잡기에 나서는 것은 기업은 물론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민 복지를 챙겨도 모자란 시간에 현장을 찾아 인상 자제를 요청해도 가격을 낮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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