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8시(현지시간) 중국 관영 중앙TV(CCTV)를 통해 리커창(68)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커다란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 속에 빠져든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서민)들의 추모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날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선 보도 2시간 만에 관련 뉴스 조회 수가 10억 5000만 회를 넘겼으며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셀수없이 올라왔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반응을 가득찼다.
네티즌들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지와 함께 “너무 갑작스럽다”,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등 메시지를 빼곡이 남겼다.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는 검색어 1위를 달리며 6시간 30분 동안 18억회 넘게 조회됐고, 관련 글은 모두 56만건 이상 작성됐다.
이에 비해 중국 관영 매체들에선 온도 차가 느껴졌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의 메인 화면에는 ‘리커창 동지 별세’ 기사가 화면 우측 상단에 올라왔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뉴스 창에선 관련 기사가 13번째로 링크됐다.
리 전 총리는 지난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제14기 1차 회의에서 마지막 정부 업무보고를 한 뒤 10년간의 총리 생활을 마감했다. 리 전 총리는 앞서 사흘 전인 2일 퇴임 직전 열린 송별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幹, 天在看).” ‘하늘이 보고 있으니 의인은 정진하고 악인은 악행을 멈추라’는 뜻으로 제갈량이 여섯번째 북벌을 앞두고 했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머리 위에 천지신명이 지켜보고 있다(擧頭三尺有神明)’이다. 당시 중화권 언론들은 리 전 총리가 시 주석을 겨냥해 내놓은 발언이라고 풀이했고 SNS에선 “퇴임하면서 남긴 의미심장한 발언”, “누구를 두고 말하는 것이냐”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송별회는 그가 이끌었던 국무원(정부 격)의 청사가 있는 중난하이에서 800여명의 국무원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리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모든 국무원 판공청 임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며 “지금 북방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오늘의 햇살은 밝고 봄빛에 목욕하는 듯 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어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말이 있다”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정말 하늘이 눈이 있는가 보다”라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재임 기간 중국 서열 2인자로서 최고 권력을 겨냥해 여러 차례 쓴소리하며 소신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2020년 5월 중국 빈곤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인 6억 명 월수입은 1000위안(약 18만 5000원)에 불과하다”고 밝혀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시 주석이 “2015년 5600만 명에 달한 절대빈곤 인구를 2019년에 550만 명까지 줄였다”면서 “2020년까지 0명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할 때였다. 리 전 총리가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2022년 5월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선 안 된다”며 시 주석이 최대 치적으로 삼아온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직격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고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 경제상황이 2020년 코로나19가 처음으로 확산돼 전면 봉쇄된 후베이성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리 취임 직후 ‘제5세대 지도부는 ’시진핑-리커창의 쌍두마차 시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시 주석에게 권력이 한층 집중되고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와해되면서 존재감이 없는 ‘유령 총리’로 전락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그는 중국 역대 최약체 총리”라면서 “하지만 그의 문제는 ‘무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리 전 총리의 간쑤성 둔황 막고굴 방문 영상에는 수백명의 관광객이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중국 관광객들이 환호했던 것은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