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한 고속도로. 한 차량이 앞서 가던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가해 차량에는 카자흐스탄 국적의 A씨 등 4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로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일가족 3명이 다쳤다. 경찰이 출동했고,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당일 조사를 받은 후 석방됐다. 단순 교통사고라, A씨는 조서에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지장을 찍고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A씨가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서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알려온 소식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전자수사자료 검수 결과, A씨가 조서에 찍은 지문(지장)이 실제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것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사건은 해당 교통사고를 수사한 검사의 요청으로 정식 재판이 청구됐다.
해당 사건을 맡았던 김대영(변호사시험 8회) 수원지검 형사3부 검사(당시 공판부 검사)는 “A씨가 사고 후 경찰에 보여준 건 미리 찍어둔 B씨의 외국인등록증으로, 이들이 카자흐스탄인이라 (경찰이) 말도 안 통하고, 외모도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을 수 있었다”며 “불법체류자인 A씨에게 현금을 받고 차량을 판 탓에 명의가 B씨로 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가 신분 확인을 위해 제시한 사진상 외국인등록증은 물론 차량 명의도 B씨였던 탓에 당연히 가해자가 그라고 인식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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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찰이 알려온 정보만으로는 A씨를 특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A씨는 불법체류자라 은행 계좌는 물론 휴대전화기 등 통신 기록도 없었다. 경찰 수사 당시 기입한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해봤으나 이미 해지한 뒤였다. 김 검사는 우선 경찰 수사 당시 확보한 A씨 지분을 PDF 파일로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 보냈고, 닷새 만에 그가 누구인지 특정했다. 또 A씨가 휴대전화 해지 전 자주 통화한 여러 연락처에 대한 통신영장으로 추적하는 등 수사망을 조금씩 좁혀갔다. A씨와 차량 동승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주 통화한 연락처도 수사 대상에 포함 시켰다. 현재 A씨가 어디에 거주하는지 등 소재 파악을 위한 과정이었다. 김 검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A씨가 주고 받은 택배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김 검사는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서 A씨가 누구인지 특정하고 49일 만에 그를 체포한 뒤 구속했다. 이는 정식 재판 청구 후 A씨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인지 수사로 전환한 끝에 맺은 결실이었다.
김 검사는 “어느 정도 소재 파악이 이뤄진 뒤 공판과 소속인 미집행자 검거팀에 조력을 받아 A씨 신병을 확보하게 됐다”며 “A씨를 구속하면서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이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A씨가 몰던 차량은 명의 자체가 B씨였던 데다 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아 피해자 보상이 요원했다. 하지만 A씨가 구속되면서 차량 수리비는 물론 치료비 등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B씨의 경우도 진범이 잡혀 공소가 취소되면서 억울하게 법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게 됐다. 김 검사는 아울러 불법체류자인 A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출입국외국인청에 고발했다. 이는 불법체류자가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수사·재판을 받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공판 과정에서 발생한 인지 사건을 한 검사가 끝까지 수사한 게 △피해자 보상 △억울한 재판 방지 △불법체류자 수사 등 ‘일석삼조’의 결과물을 가져온 셈이다.
▶서울경제는 해당 기사로 인해 피해자가 2차 가해 등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익명 처리하는 한편 사건 내용도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해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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