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제한적 지상전에 돌입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긴급 사안이라며 재차 대피를 촉구했다. ‘새 국면 진입’을 선언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공격 강도를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최후통첩으로 중동 정세가 한층 악화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2주간 가자지구 북부와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임시로 남쪽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해왔다”며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들 개인 안전을 위한 것으로, 이것은 매우 긴급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지상전은 시작됐지만, 전면전 대신 제한적 작전과 공습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밤사이 가자지구 진입 병력을 늘리며 양측 교전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가자 내 구축한 총연장 480km에 달하는 지하땅굴을 파괴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국경 인근의 가자지구 한 터널 입구에서 벌어진 교전에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무장대원 다수를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박격포 여러 발이 오갔으며, 인근 네티브하아사라 지역에 공습 사이렌 경보가 울렸다고 현지 언론인 타임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하마스 지휘소 등 450곳을 공습해 하마스 항공대 수장 이삼 아부 루크베를 제거했다. 그는 지난 7일 이스라엘 남부 기습 공격 당시 하마스의 드론(무인기)과 패러글라이더 공격, 공중 탐지, 방공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이스라엘 진격·이란은 경고…중동 정세 소용돌이
이스라엘이 지상작전을 확대하자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이 반발하는 등 중동 정세가 새로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이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엑스에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것이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에 전방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며 “미국은 저항의 축에 메시지를 보냈지만, 전쟁터에서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밤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하마스에 잡혀 가자지구에 억류된 200명 이상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민간인이 위험에 처했다는 비판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범죄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위선자”라고 반박했다. ‘하마스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란의 지원 없이는 하마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세부적으로 이란이 지난 7일 공격에 개입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서방을 적대시하는 ‘악의 축'”이라고 비난했다.
유엔 “가자, 시시각각 절박…벼랑 끝에서 물러나야”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재앙에 깊은 우려를 보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자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이 민간인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제인도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민간인 보호 언급은 이스라엘의 부분적 지상전 개시 이후 수니파 무슬림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등 국제사회가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이날 유엔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과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네팔을 방문 중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푸슈파 카말 다할 네팔 총리와의 공동 회견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먼저 하마스를 향해 “끔찍한 공격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히 규탄한다. 민간인을 살해하고 다치게 하고 납치한 행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인도주의적 휴전 대신 군사작전을 강화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인 사상자 숫자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모든 당사자는 국제인도법에 따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또 “안전하게 피할 데가 없는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 피난처, 의료서비스의 접근이 차단된 채 끊임없는 폭격에 노출돼 있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 사태에 책임 있는 모든 주체가 벼랑 끝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극한에 내몰린 가자 주민들’ 구호품 창고 난입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의 토마스 화이트 국장은 “물샐틈없는 3주간의 봉쇄로 극한에 내몰린 가자지구에서 시민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가자 주민들은 유엔의 구호품 창고에 난입해 밀가루 등 구호품들을 마구잡이로 가져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보내온 구호물품은 이집트쪽 라파 검문소를 통해 일부가 가자지구로 들어갔지만, 2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누적 기준 가자지구 내 사망자는 8000명을 넘어섰다. 가자 보건부가 전날 오전에 집계한 누적 사망자는 7703명으로 사망자 수가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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