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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지능 물고기’를 꿈꾸는 미래형 K-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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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테스트

물 밖으로 거의 안 나오고

소리 없이 돌아다니며

첨단 전투력까지 갖춘

상상 속 잠수함이 현실로…

장보고Ⅲ 잠수함. ⓒ 데일리안 DB 장보고Ⅲ 잠수함. ⓒ 데일리안 DB

핵전쟁 용어처럼 쓰이는 ‘공포의 균형’은 그 자체로 패러독스다. 네가 나에게 한방 먹이면 나는 너에게 두 방 먹여 같이 망하겠다는 동귀어진(同歸於盡) 전략은 윈-윈(win-win)과 정반대되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국가 간 충돌을 막는 현실적 억지력이 된다는 건 무수한 전쟁을 거쳐 터득한 일종의 경험칙이다. 평화는 모든 인류의 소망이자 당위이지만 말로만 평화를 추구하는 종족은 지구상에 없다. 이미 오래전에 평화롭게 멸종했으니까.

적의 도발을 압도할만한 비장의 무기를 통칭 ‘비대칭 전력’이라 한다. 분야별로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해전에서는 역시 잠수함이 대표선수다. 전투용 잠수함은 나치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본격 사용한 이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진화해왔다. 적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접근해 영문도 모른 채 파괴되도록 만드는 은밀성이다. 태생적으로 첨단기술 집약체였던 잠수함은 이제 너무 전문화되고 군사기밀이 많아 설명하기도 대략 난감하다. 극소수 국가들이 철통 보안 속에 관리해온 기술을 우리가 처음 배워서 따라잡고 추월해 ‘잠수함 명가’로 일어서기까지 지난 40년간 겪었던 역경과 고초들은 생략하자. 한국 산업 발전의 역사는 저마다 눈물겨운 사연의 도가니다.

잠수함은 본질적으로 물 위를 떠다니는 수상함과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엄청난 수압을 고르게 견디도록 골격에 해당하는 압력선체를 완벽한 원통형으로 유지해야 하고 특수재질을 사용한다는 건 상식이다. 설계-제작과정에서 미세한 오류라도 방치했다간 십리도 못 가서 찌그러진다. 몇 달 전 난파선 ‘타이타닉’호를 구경하러 대서양에 들어갔던 관광용 잠수정이 어떤 모습으로 인양됐는지를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더구나 잠수함의 목적은 관광이나 사업이 아니고 전투 수행이니 기능의 복잡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난해한 요인들을 감안해 미래형 잠수함의 지향점을 일반적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고도지능을 가진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다. 수천 톤짜리 쇳덩어리가 웬 지능적 물고기냐 싶겠지만 한국의 명품 잠수함은 이미 그 수준에 매우 근접해있다. 물고기들에겐 너무 당연해서 주목받지 않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첫 번째 특징, 물고기는 쓸데없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육지 왕자님을 흠모하는 인어공주가 아닌 다음에야 물고기가 딱히 물 밖에 나올 까닭이 없다. 반면 재래식 잠수함은 수시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하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나치의 잠수함 어뢰에 판판이 당하던 연합군 해군도 이 틈을 노려 분노의 두더지 잡기로 반격했다. 여기서 숨을 쉰다는 건 비단 승조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잠수함을 움직이는 거대한 디젤엔진은 연소과정에서 훨씬 많은 공기가 필요하다.

둘째, 물고기는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한다. 반면 잠수함은 연료를 자주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셋째, 물고기는 불필요한 소음을 내지 않는다. 먹잇감을 공격할 때나 천적에게 들켰을 때나 시끄러워서 좋을 일은 없다. 잠수함은 운용과정에서 생기는 소음이 소나 같은 탐지장치에 걸린다. 넷째, 물고기는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전투력과 무관한 얘기지만 화석연료는 항상 오염물질을 남긴다.

프랑스의 상업예술가였던 장 마크 코테(Jean-Marc Côté)를 비롯한 몇몇 예술가들이 1899~1910년에 그린 그림들 중 일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전시됐으며, 이후 미국의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우연히 발견해 1986년 작품인 ‘미래: 19세기가 본 2000년의 모습(Futuredays: A Nineteenth Century Vision of the Year 2000)’에 소개됨.ⓒ 데일리안 DB 프랑스의 상업예술가였던 장 마크 코테(Jean-Marc Côté)를 비롯한 몇몇 예술가들이 1899~1910년에 그린 그림들 중 일부.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전시됐으며, 이후 미국의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우연히 발견해 1986년 작품인 ‘미래: 19세기가 본 2000년의 모습(Futuredays: A Nineteenth Century Vision of the Year 2000)’에 소개됨.ⓒ 데일리안 DB

오늘날 K-잠수함 기술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 기울여온 노력의 산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획기적 도약은 아예 연료체계의 틀을 바꿔버린 공기불요추진(AIP) 장치의 등장이다. AIP는 수소를 산소와 결합해 전기를 생산하고 맹물을 배출하는 신개념 추진체계다. 최근 국제전시회에 선보인 3600톤급 장보고-III 배치-II가 바로 이 수소전지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결합해 만든 최신형 하이브리드 잠수함이다. 잠항시간을 3배 이상 늘려 국제적 제약이 많은 핵잠수함을 제외하고는 경쟁상대가 없고 오염물질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소음을 없애는 스텔스 기술 혁신도 괄목할만하다. 잠수함 소음은 보통 유체소음, 기계소음, 프로펠러소음으로 구분한다. 이걸 줄이려 선체를 유선형으로 만들고 생선 비늘 같은 흡음 타일을 붙이고 내부엔 탄성 마운트를 설치한다. 여기에 음향수조 실험을 통해 소리의 파장, 반사, 산란, 굴절 등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탐지능력과 피탐능력을 동시에 향상시켜왔다. 특히 동력장치 프로펠러의 경우 물속에서 회전할 때 공기 방울을 만드는 공동현상(cavitation)을 일으키는데 위치 노출과 선체 부식의 원인이 된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동수조에서 연구된 데이터와 3D프린터로 제작된 모형선박 실험을 기반으로 선체별 맞춤형 해법을 강구 중이다. 말은 쉽지만 하나같이 세계적 수준의 최첨단 연구들이다.

이쯤 되면 상상하던 물고기와 꽤 비슷해졌을까. 아직 멀었다. 고도지능을 갖추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잠수함도 민간선박처럼 인공지능 기반의 무인 자율운항체계로 진화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난이도의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화물선은 최적 항로에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임무가 완료되지만 전함은 노출도 피해야 하고 무엇보다 적을 무력화하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없다. 마주치는 상대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순식간에 식별하고 상황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순발력이 생명이다.

실제 전투수행을 위해선 오차범위 0.01mm 이내로 설계된 초정밀 발사관에서 언제든 발사 가능한 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해 첨단어뢰, 다목적 무인잠수정 등 온갖 임무가 부여된 장치들이 탑재된다. 이런 장비들을 유지관리하려면 다차원 센서를 통해 이상현상을 신속히 탐지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사전 예측하는 능력까지 필요하다. 인공지능도 머리 아파할만한 고난도 업무다. 그런데도 상당한 가시적 성과를 거뒀고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부분도 많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다. 100여 년 전 프랑스 화가들은 고래 몸에 수레를 매달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미래 잠수함을 상상했다. 그 그림만큼이나 허황해 보이던 K-잠수함은 상상을 하나씩 현실로 바꾸며 새로운 해양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미래전쟁을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전쟁을 막기 위한 안보체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값지다. 도발을 노리는 적에게는 등골 오싹한 유령이자 악몽이 될 테니까.

ⓒ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CP-2023-0078@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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